그저께 밤에 벌어진 여자 프로당구[LPBA] 결승에서 김가영 선수가 김보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5연속 우승에 개인 투어 30연승이라는 대기록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당구는 유독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도 중요하다. 실력보다 외적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나도 여러 운동을 즐겼지만 당구만큼 미묘하고 종잡을 수 없는 종목도 없다. 언제든 이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5연속 우승과 30연승을 한다는 것은 탁월한 실력과 함께 플러스알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른 종목의 30연승과는 다르다.
당구를 즐기기 때문에 2019년에 LPBA가 출범했을 때부터 쭉 경기를 봐 왔다. 김가영 선수는 포켓볼에서 쓰리쿠션으로 옮긴 뒤 초기에는 적응이 안 돼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래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어 3연속 우승을 하기도 했다(당구의 미래는 이미래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김가영 선수가 독보적인 위치로 오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재 김가영 선수의 애버리지는 1.2까지 나온다. 처음에는 0.7 정도였다. 수 년 사이에 이 정도의 실력 상승은 경이적이다.
현재로서는 김가영 선수에게 적수가 없다. 실력이 워낙 특출하다 보니 이젠 남자부 경기에 나가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남자 선수와의 애버리지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니 허황된 말도 아니다. 바둑에서는 루이나이웨이가 남녀 통합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최정 선수도 세계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갔다. 바둑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스포츠 종목은 남녀의 육체 능력의 차이로 인해 아무래도 여자한테는 핸디캡이 있다. 골프나 테니스를 보면 안다. 그나마 당구가 신체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예민한 두께를 맞추는 데는 여자가 유리한 측면도 있다. 과연 김가영 선수가 남자 선수와 대등한 대결을 벌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남자 선수들의 평균 애버리지는 1.5 정도다.
LPBA에도 실력 있는 여자 선수들이 많다. 김가영이 압도적 독주를 하는 데는 실력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운도 한두 게임이지 5연속 우승이나 30연승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승부사로서의 마인드랄까, 기질이 제일 크지 않나 싶다. 포켓볼 선수로서 세계 정상에 선 과정과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른 선수가 가지지 못한 자산이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 김가영과 대결한 김보미 선수도 김가영의 아성을 깨기 위해서는 내공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김가영 선수의 풍부한 경험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인정했다.
김가영 선수의 별명은 '당구 여제(女帝)'다. 군웅들이 할거하던 여자 당구계를 일거에 평정해 버렸다. 쓰리쿠션 당구에서는 UMB를 포함해서 세계 최고임이 분명하다. 실력이 어디까지 뻗어갈 지 지켜볼 일이다. 남자와도 당당히 대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녀는 말한다.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선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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