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샌. 2015. 10. 11. 12:51

가슴 따스해지는 산문 모음집이다. 시인, 소설가에서부터 농민까지 서른아홉 분의 주옥같은 글이 실려 있다. 어릴 적 추억, 고향과 가족, 생활 현장, 불의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한 소재로 편집되어 있다. 삶의 향기가 나는 훈훈한 글들이다.

 

책에는 가슴 아린 내용도 많지만 결국은 흐뭇한 미소가 일게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정(精)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가치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책의 제목인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김선주 씨가 쓴 '자장면과 삼판주'다. 다른 글보다 뛰어나다기보다 작가가 그리는 노년의 꿈이 나의 꿈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허영인지 모르지만 - 외롭고, 쓸쓸히, 고상하게 -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아무 때나 전화해서 자장면을 사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후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자장면과 삼판주

 

아름다운 글 한 편을 읽었다. 건축가 김원 선생이 돌아가신 대학 시절의 은사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그 교수는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책 읽는 것으로 소일하셨다고 한다. 건축가 교수라면 은퇴하여 당연히 서울시나 건설부의 자문위원, 전문위원, 심의위원이라는 자리에 앉아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수주에 직간접적으로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보통인데 일절 그런 자리를 마다한 분이라고 한다. "은퇴는 은퇴여야지...." 하셨다는 것이다. '자장면과 삼판주'라는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 아마 꽤 심심하셨을 것이다. 그래선지 가끔 나에게 전화를 거셔서 "김군, 나 점심 좀 사주려나. 자장면도 좋고...." 하셨다. 나는 이분이 '짜장면'이라 하지 않고 '자장면'이라고 천천히 발음하시는 게 듣기 좋았다. 내가 차로 모시러 가겠다고 하면 "아니야, 내가 나가서 버스를 타면 되네" 하셨다. '뻐스'를 '버스'로 하시는 것도 듣기 좋았다. 어느 핸가 정초에 세배를 드리려고 가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시면서 집을 알겠느냐 얼마나 걸리느냐 물으셨다. 그날은 폭설이 내려서 그 집까지 가는데 애를 먹었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교수님이 부인과 함께 우산을 쓰고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썰렁했고 난방도 시원치 않았다. 음식 준비나 누가 다녀간 흔적도 없었다. 그날 밤 교수님은 내간 사간 샴페인을 다 잡수시고 기분이 좋아서 "여보. 김군이 가져온 삼판주가 아주 좋구먼" 하셨다. 샴페인을 '삼판주'라고 하는 것이 아주 듣기 좋았다. 몇 년 뒤에 교수님은 조용히 돌아가셨고 장례식도 조촐히 치러졌다....

 

누구나 어렸을 때 꿈을 꾼다. 나는 숲 속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었다.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던 탓에 아버지 쪽으론 강원도에서, 어머니 쪽으론 북에서 무조건 밀고 쳐들어온 친척들 때문에 마당에 군용텐트까지 쳐놓고 북적거렸다. 돈 달라고 하면 일단 자동적으로 "없다"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서도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집에 온 숱한 친척들 밥을 지어 먹였다. 외롭고, 쓸쓸히, 고상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 꿈은 부잣집 맏며느리로 바뀌었다. 부잣집이라면 친정어머니처럼 쌀 사랴 연탄 사랴 허둥대고, 평생 내복을 기워 입고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딸들이 목욕탕 가게 돈 달라고 할 때마다 "너희들이 기생이냐 목욕을 자주 하게" 야단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현대문학>에 연재되던 <토지>를 읽고 이 결심은 굳어졌다. 여자로서 가장 파워 있는 것은 맏며느리 같았다. <토지>의 윤씨 부인이 곳간 열쇠를 거머쥐고 친척과 주변 사람들을 두루 살피며 서릿발 같은 권위를 갖는 모습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싶었다. 동학군 장수와의 사이에 불륜의 아들을 두었다는 것도 아슬아슬하게 매력적이었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며 세상풍파를 겪는 동안 이러한 꿈을 까맣게 잊었다. 철없는 시절의 부질없었던 꿈 대신에 어떤 노년을 맞을까가 숙제가 된 나이가 되고 말았다. 늙을수록 노욕이 심해진다는데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도 산다는 그 긴 노년에 어떻게 내 안의 노욕을 다스리며 살 것인가라는 문제가 코 앞에 닥친 것이다. '자장면과 삼판주'를 읽고 이거다 싶었다.

 

은퇴하여 책과 영화로 소일하다가 그도 심심하면 <씨네21>에 전화를 걸어 "허문영 편집장, 혜리 기자, 소희 기자, 나 점심이나 사주려나. 자장면도 좋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혹시라도 연초에 폭설을 뚫고 삼판주라도 사들고 물어물어 집을 찾아올 후배가 한두 명은 있지 않을까. 그래도 쌀과 밀가루와 멸치, 김치, 된장, 몇 가지의 푸성귀만 있으면 요술처럼 잔칫상도 차려내던 친정어머니의 솜씨는 물려받았으니 따뜻한 밥상 정도는 차려낼 수 있을 터이다.

 

청빈이 무능의 소치가 아니고, 검박한 삶이 누추하지 않은 그런 삶은 우리 시대엔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허영이고 부질없는 것일까. 젊은 날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니 노년의 꿈이라도 이루고 싶다. 후배들, 자장면과 삼판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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