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야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끔씩 그 자리에 붙이고
뻔디기 니야카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뻐억, 뻐억, 뻔디기, 한봉지에 십원, 십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
그것이나 겨우 끌어달라는 것이야.
그것도 우리한테뿐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6학년짜리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이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제에길!
- 뻔디기 / 서정주
서정주 시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 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정말 미당이 맞는지 이름을 재차 확인했다. 나는 시 작품보다는 시인의 삶과 의식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당은 과거 행적도 문제지만 자신의 과오에 대해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순천(順天)한 삶을 살았다고 변명하는 모습이 싫었다.
이 시는 부와 권세가 대물림되는 암담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오래전에 쓴 것이겠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시스템은 더 강고해졌고, 흙수저냐 금수저냐로 인생이 결정된다. "제에길!" 불평이나 신세 한탄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고민은 여기를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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