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臨淸閣) 기왓골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속,
깃털 곤두세우고
찬 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 솔개 / 김종길
아흔이 넘으신 김종길 시인은 여전히 시를 창작하고 계신다.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매우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며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가 없는 것 같다. '병 없이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시인이 지향하는 시세계가 '깃털 곤두세우고 찬 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라는 구절에 잘 함축되어 있다. 시인이라면 마땅히 서릿발 같은 지사 정신을 갖추어야 하리라. 따뜻한 아랫목이나 찾는 나 같은 위인에겐 정신이 번쩍 드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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