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고만례 할머니는
어느 여름 저녁
모깃불 피운 멍석에 앉아
밤하늘에 솜솜 박힌 별을 세며
옥수수를 먹고 있었대
그때,
머리에 커다란 짐을 인 아줌마가
사립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더래
저녁도 못 먹었다는 아줌마에게
있는 반찬에 남은 밥을 차려준 뒤
짐을 풀어 하나하나 살펴보던 할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놋양푼이
그렇게나 좋아 보였다지 뭐야
며칠 뒤 있을 할아버지 제사 때
떡과 나물과 전을 담으면 좋을 것 같았지
한 개에 삼백 원이라는 놋양푼을
두드려 보고 만져 보고 문질러 보다
할머니는 은근하게 흥정을 했대
"세 개 살 테니 천 원에 주슈."
열무 비빔밥을 한입 가득 떠 넣던
놋양푼 아줌마는 눈을 깜빡이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거절했대
하지만 할머니는 조르고 또 졸랐지
결국 아줌마는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날
천 원에 놋양푼 세 개를 주고 갔대
할머니는 그걸 들고 산길을 내려가
동네방네 자랑을 했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깔깔 웃었지만
이유를 모르는 할머니는
그냥 같이 웃어버렸대
그 뒤로 할머니는 아줌마가 오면
있는 반찬에 함께 저녁을 먹고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얘기를 했지
친자매처럼 가까워져서야
수줍게 고백을 했는데
고만례 할머니도 놋양푼 아줌마도
전혀 셈을 할 줄 몰랐다지 뭐야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헐 수 없이 장사를 시작했슈."
"셈을 모르고서 어찌 장사를 하누."
할머니가 혀를 차며 걱정을 하자
아줌마는 환하게 웃었대
"괜찮어유. 사는 사람이 하잖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아줌마는
깊은 산속 고만례 할머니 집을
성님 집처럼 자주 찾아왔대
어느 날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고만례 할머니를 안고
눈물 흘리던 그날까지
-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 이창숙
이 차가운 계절에 누군가의 동무가 된다는 건 화로의 온기처럼 따스한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 잇속을 따지지 않아도 되던 순박했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이 아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그랬다. 큰 보따리를 이고 찾아오던 입담 좋던 옷 장수 아줌마도 떠오른다. 방에서는 깔깔깔 웃음소리가 넘쳤다. 옷 파는 것보다 동네 사람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 오는 것 같았다. 세모가 되니 사람의 훈기가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무리 시스템적으로 보완해도 안타까운 고독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현대의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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