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소스라치다 / 함민복

샌. 2016. 2. 4. 17:34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 소스라치다 / 함민복

 

 

경안천에는 오리가 많다. 경안천을 걷다 보면 천변 풀섶에서 먹이를 먹는 오리를 만난다. 방해하지 않으려 피해서 걷지만 오리는 인기척만 느껴도 천 가운데로 도망간다. 미안하다. 어떤 때는 너무 예민한 그들이 야속할 때도 있다. 시에 나오는 뱀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그마한 곤충을 만나도 놀란다. 그러나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오히려 지상의 다른 생명들이다. 덩치가 산더미만 한 인간이 다가오는데 위협을 느끼지 않을 동물이 있을까. 역지사지해야 한다. 지상에서 인간보다 더 무서운 동물은 없을 것이다. 인간만 모를 뿐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스듬히 / 정현종  (0) 2016.02.18
아름다운 얼굴 / 맹문재  (0) 2016.02.11
깡통 / 곽재구  (0) 2016.01.30
뻔디기 / 서정주  (0) 2016.01.23
솔개 / 김종길  (0) 201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