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화장 안 하는 여자

샌. 2016. 3. 8. 19:54

두 달 전에 대만에서는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었다. 대만에서는 첫 여성 총통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대만 원주민인 파이완족 출신으로 1956년에 태어나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교수를 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 민진당 주석에 올라 이번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했다. 차이잉원의 당선에는 진보적 성향과 함께 그녀의 개인적 매력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차이잉원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소개였다. 사진을 보니 꾸밈없는 수수한 얼굴 그대로였다. 얼굴에서는 그녀의 강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화장 안 하는 여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려는 걸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남자도 강하고 씩씩하게 보이려 어지간히 애쓴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친 게 문제다.

 

얼마 전에 영국에서 몇 달 살다 온 지인을 만났는데 여자들이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복장도 운동화에 허름한 진바지 차림이 많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나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오죽하면 성형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듣겠는가. 젊은 여자들이 너무 진하게 화장을 한 모습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가면을 쓴 것 같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화장이 도리어 역효과를 낸다는 걸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화류계 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본 여자들 중에서도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면 거부감이 들었다. 수수한 차림에 화장기 옅은 얼굴에 호감이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화장의 강도와 지적 수준은 반비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참 이상한 게 있다. 골 파인 웃옷을 입고는 고개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린다. 짧은 치마를 입고는 계단을 오를 때 핸드백으로 뒤를 감춘다. 여성의 노출과 은폐의 상관관계는 수학의 고차방정식보다 어렵다. 여성의 자아실현은 화장이나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남성이 큰 차를 타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심리나 다를 바가 없다.

 

예뻐지고 싶다는 건 여자의 본능이라지만 가부장 사회의 지배자인 남성에 의해 강화된 측면이 크다. 여성을 집안에 가두고 길들이는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만큼 밖으로의 시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전통적 관습에 얽매인 경우를 지금도 볼 수 있다. 여자들이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벗어 던질 때 진정한 여성 해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차이잉원이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좋아졌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정함과도 관계가 없다. 차이잉원 같은 여자를 보면 속이 단단히 여물어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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