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먹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선우사(膳友辭) / 백석
이런 시를 남긴 백석이 고맙다. 물질이 범할 수 없는 고결한 정신의 빛이 환하다. 이 시를 쓸 때 백석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듯하다. 함주 바닷가에서 반찬이라고는 가자미 하나밖에 없는 식사였다. 그래도 불평이나 한탄이 없다. 가난한 식탁이 오히려 정결하게 빛난다. 현실을 초월하는 순수한 백석 정신이 순백의 이미지로 잘 그려져 있다. 매일 걸음마다 허방에 빠지지만 그래도 당신을 닮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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