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극락조화

샌. 2011. 3. 16. 17:47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 만난 극락조화(極樂鳥花)다.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위로 올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다. 꽃은 새 머리에 달린 깃처럼 생겼는데 색깔이 매우 화려하다. 실제로 남태평양 지방에 극락조라는 새가 사는데 꼬리가 아름답다. 둘이 닮아보이지는 않는다. 극락조화는 상상 속 극락세계에 사는 새로 그려보는 게낫다. 극락(極樂)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이 사는 정토다.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한다.

 

눈부시게 화려한 것은 지극한 슬픔과 통하는가 보다. 신기섭 시인은 '극락조화'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공장 다니는 친구 하나 연삭기에 코가 스친 순간

얼마나 깊이 다쳤나 슬쩍 코끝을 들어보았다고

코가 얼굴에서 뒤꿈치처럼 들렸다고 피가

터진 그의 얼굴이 이 저녁의 화단 안;

시름시름 숨이 멎어가는 저 붉은 極樂鳥花 같았겠다.

날아오를 새의 형상이라는 꽃, 그러나 얼굴이 찢어져 있어

폭삭 주저앉은 새와 앉음새가 닮은 꽃, 느닷없이

세찬 바람에, 혹은 떼을 지어 지나가는 죽은 새들의 혼에

꽃 花자를 지우고 속박에서 벗어난 듯

오롯하게 몸을 세우고 있는 한 마리 極樂鳥,

훨훨훨훨 날아갈 자세다. 피 섞인 숨,

헐떡이는 極樂鳥, 저 얼굴을 누가 찢었을까

상처로 숨을 쉬느라 아무 말 못하는 얼굴인데

행복해....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환한 표정은

기뻐.... 황홀해.... 즐거움의 극치!

추운 가을 저녁의 환한 極樂鳥, 피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실 때마다 이승을 저승이게끔

느끼게 하는 노을이 화단 가득 번져

점점 더 붉어진 極樂鳥, 훨훨훨훨 훨훨훨훨

노을빛과 똑같은 색으로 날아갔나 한순간에

캄캄해진 화단 어두운 하늘, 저 너머에서

누군가 내 표정을 읽고 있는 것 같아

언젠가 문병 가서 본 친구의 그 다친 코를

꼭 붙잡고 있던; 꽃 花자 같은 수술 자국을 생각하였다.

 

- 극락조화 /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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