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변산바람꽃을 보러 가자고 Y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때가지난 것 같다고 했더니 올해는 꽃 피는 시기가 늦으니 혹 게으른 변산아씨가 있을지 모른다며 가 보잔다. 마침 어제 눈이 내려서 땅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이런 데 변산아씨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길을 나섰다.
안양역에서 만나서 10번 버스를 타고 병목안 입구에서 내렸다. Y 형의 동료 한 분도 함께 했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것도 재미나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편리하긴 하지만 오순도순 걸어가는 재미를 잃는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아름다움도 놓친다.
눈의 찬 기운 탓인가, 노루귀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한 노루귀를 만났으니 감사한 일이다. 며칠 전에는 노루귀를 만나러 청계산을 갔는데 하루 종일 산을 돌아다녔으나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때의 허망했던 기분이 이 노루귀로 씻은 듯 사라졌다.
다행히 변산아씨 몇 송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미 대부분의 변산아씨는 꽃이 지고 잎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변산아씨와 처음 만난 J 씨는 환호성을 지른다. 5년 전 우리가 이곳에서 처음 변산아씨를 만났을 때가 그랬다. 그때는 꽃밭이었는데 지금은 듬성듬성 남아있는 게 아쉽다.
눈 속에서 피어난 변산아씨는 처음 만난다. 그 진기한 경험만으로도 Y 형에게 고맙다. 꽃은 이미 절정을 지나고 개체수도서너 송이밖에 없어 사진을 다양하게 찍는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만이라도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젠 일 년이 지나야 아씨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리라. 그녀로 인해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