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다가 길 주변에 있는 몇 군데를 들러보다. 원래는 청풍호 벚꽃 구경이 우선이었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고 꽃봉오리만 맺혀 있다. 서울보다다 개화 시기가 늦다.
제천 금수산 자락에 정방사(淨芳寺)가 있다. 정방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바람이 꽃향기[芳]와 어우러진 절이다. 절은 큰 암벽 앞에 세워져 있다. 터가 좁으니 건물이 크거나 많을 수 없다. 그래서 정방사는 소박하고 단아하다.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확 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정면으로는 충주호와 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절 조망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다.
절 건물 중 하나인 유운당(留雲堂)이다. 주련 내용은 이렇다.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산 속에 무얼 가지고 사냐하면
산봉우리 흰 구름 머물러 있고
다만 스스로 즐거워 할 뿐
그대에게 갖다드릴 순 없구려
절은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아 보는 눈이 즐겁고 흐뭇하다. 한가로이 누워 있는 동자승 옆에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단양 남한강의 향산여울에 봄물이 들고 있다. 강물은 맑고 짙푸르다. 강이 만든 모래사장이 폭신하다. 강 건너편은 절벽이다. 우리 강산에 이런 풍경이 남아 있다는 게 고맙다.
고향 마을 앞에도 강이 흐르는데 지금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 강 양안으로 둑을 쌓고 바닥에도 돌을 깐다. 작은 4대강 사업이다. 명색이 수해 예방인데 근래 수해가 난 적이 없다. 주민들도 못마땅해 한다. 어머니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미친 지랄을 한다!"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에 신라시대 석탑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향산리 삼층석탑이다. 신라 눌지왕 19년(435)에 묵호자가 이곳에 향산사(香山寺)를 세웠다고 한다. 절은 없어지고 석탑만 남았다. 1935년에 도굴꾼에 의해 탑이 해체되고 사리가 없어졌느데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소박하면서 단정한 석탑이다.
동생은 남쪽에 볼 일을 보러 가고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반찬을 장만해 두면 아직은 음식을 챙겨 드실 수 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우리도 자주 그런 말을 하는데 아흔을 앞에 둔 어머니야 오죽 하랴. 마을 할머니들 대부분이 병과 외로움에 고통을 겪는다. 자식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부모가 계신다는 것은 감사하지만, 동시에 심적 부담도 비례해서 커진다. 동생이 내려가 짐을 덜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젯거리가 돌출한다. 파도 잘 날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뭘 더 바라겠는가. 지금처럼만 살아주시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