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잘 쓰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해서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안 했다면 혼자만 후회하면 된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세상을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안 하는 게 차라리 공익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할 꺼야?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바보 같은 사람도 있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달콤한 말 듣기를 바라는 걸까. 만약 아내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혼하지 않을 거야!" 현재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내가 결혼 생활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와 맞추고 어울려 살아갈 마음 바탕이 부족하다. 지금까지도 그럴 만한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쓸데없이 가까운 사람 애먹일 이유가 없다.
아내한테 자주 듣는 말이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다. 사실이 그러하니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한다. 이기적이라는 직접적인 비난을 안 듣는 게 다행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고 세상살이에 두루뭉술 적응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게 아닌가도 싶다. 사람이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는가 보다.
20년 전에는 시끄러운 세상사를 피하고 싶어 밤골행을 택했었다. 그러나 시골 마을이 더 소란스럽고 불편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도 나를 위해 마련된 장소는 없었다. 철수해 나오면서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도피는 결코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처럼 홀로 사는 산중 생활은 어떨까? 제 한계도 모르는 철부지 나이는 지난 지 오래다.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공상을 하노라면 홀로 있을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픈 바람으로 귀결된다. 작은 오두막, 아니면 방 한 칸이어도 괜찮다. 가을이 깊어가서인지 몸에서 은둔 호르몬이 분출하며 나를 부추긴다. 요사이는 시골집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일이 잦다. 봄바람이 살랑댈 때 생기는 가출 욕구 못지않게 가을바람의 유혹도 만만찮다. 이 나이에 날 유혹해 줄 게 얼마나 남아 있다고, 쓸쓸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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