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밥값 / 정호승
서점에 간 길에 정호승 시인의 신작시집 <밥값>을 샀다. 지난 천안함 사건 때 시인에 실망하여 시를 읽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꼭 그럴 일만 아니다 싶었다.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면 편식이 된다. 내 생각이 존중받으려면 나와 다른 생각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는 시 자체로 즐기면 되는 것이지 시인의 사상이나 행위와 꼭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시집을 고른 데는 '밥값'이라는 시집 제목도 한 몫을 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나도 밥값을 하며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들었기 때문이다. 밥값을 한다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 밥을 먹듯이 나 역시 다른 생명의 밥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어머니를 빌어서 당부하는 모습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밥값은 공명과 부귀영화거나 인간 세상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몫의 포기이고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짐이다. 자발적으로 희생과 고통을 달게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밥값을 한다, 즉 인간답게 산다는것은 남을 밟고 올라가는 짓을 포기하고 반대로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줌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진정한 의미가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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