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해 뜨는 집

샌. 2020. 6. 23. 08:14

고등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4교시는 HR이었다. HR은 'Home Room'의 약자로 글자 뜻과는 상관없이 학급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면서 회의 절차는 따랐으나 거의 형식적이었다. 회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없었다. 발언도 거의 농담 따먹기 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회의를 시작하는 것만 보다가 교무실로 내려가셨다. 그러면 반장은 적당히 회의를 마무리하고 칠판에 'Home Room' 대신 큼지막하게 'Happy Recreation'이라 바꿔 적곤 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2학년 때 반장이었던 Y는 오락부장을 겸했는데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주의였으므로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었다.

 

'Home Room'에서 'Happy Recreation'으로 바뀌면 Y가 먼저 한 곡조를 뽑았다. 제일 많이 들은 노래가 'The House of the Rising Sun(해 뜨는 집)'이라는 팝송이었다. Y의 십팔번이었다. 당시는 무슨 노래인지 전혀 몰랐다. 악을듯 토해내던 열창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뒤에 대학생이 된 다음에 제목과 가사를 알게 되었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는 어두운 노래다. 잘못 산 인생에 대한 회한과 함께 사회 고발적인 의미도 들어 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희멀건 부잣집 아들인 Y의 애창곡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그 뒤에 만날 일이 없었으므로 왜 이 노래를 좋아했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아마 십대의 이유 없는 반항심이 이런 노래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다.

 

이 노래는 영국의 록 밴드인 'The Animals'가 1964년에 발표한 히트곡이다. 제목의 '해 뜨는 집'은 교도소를 의미하는 것 같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And God, I know I'm one

 

뉴 올리언즈에 집이 한 채 있다네

사람들은 해 뜨는 집이라고 부르지

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그 곳에서 인생을 망쳤다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옛 리듬에 몸이 먼저 움찔, 하며 반응했다. 노래 한 곡이 불현듯 50년 전 과거로 나를 끌고 갔다.

 

토요일 4교시 고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고함 질렀다. 다른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해 뜨는 집'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강압적인 교육을 받던 아이들의 울분이 '학교'와 '해 뜨는 집'을 동일시한 건 아니었을까. 일부 의식이 깨인 아이는 그런 의미로 이 노래를 소리쳐 불렀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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