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책 읽는 소리

샌. 2020. 7. 30. 13:24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유별난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에 일흔이 되어서 첫 손자를 봤으니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오죽했겠는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버릇없이 자랐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이랴 이랴" 하면, 할아버지는 엉금엉금 기면서 내가 끄는 대로 따라다니셨다. 수염이 뽑혀도 그저 좋아라 하시며, 손자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역이라도 마다치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이 희한한 구경거리가 났다고 모여들었다 한다.

사랑방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자주 놀러 오셨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깨우쳤을 때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으로 나를 부르시고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또래보다 앞서 글자를 익힌 손자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동갑내기보다 나는 먼저 학교에 들어갔다. 칭찬에 신이 난 철없는 나는 아마 마을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책을 읽었을 것이다. 틈틈이 할아버지의 추임새가 들어왔음은 물론이다. 우리 집은 자연스레 책 읽는 소리가 나는 집으로 유명해졌다.

할아버지는 학교에도 몰래 찾아오셨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손자를 보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유리창으로 흐뭇하게 지켜보는 할아버지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할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까막눈이셨다. 그러니 손자가 학교에 들어가고 공부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하게 여겨졌을지 짐작이 된다. 당시 할아버지는 이미 70대 중반이셨다.

많은 기억이 사라졌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책 읽은 기억만은 오롯이 남아 있다. 아마 할아버지는 손자를 통해 당시 1학년 교과서는 다 외우셨을 것이다. 나도 할아버지 덕분에 책과 더욱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책 잘 읽는 똑똑한 아이라는 유년 시절의 칭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책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 아득한 시절에서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이젠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고, 지금 손주는 당시의 내 나이다. 손주도 이제 한글을 깨치고 책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데 요사이 아이들에 비하면 늦은 편이다. 가끔 집에 찾아오는 손주를 보면 60년 전의 어린 나와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뭉클해지는 뭔가가 있다. 그 세월의 아득한 깊이를 감당하기에 벅차다.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까불어대기만 하는 손주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멀리 도망가 버린다. 내 앞에서는 장난만 치려고 하지 차분히 앉아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60년 전 그때 광경을 재현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손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언젠가는 한 번 내 옆에서 낭랑하게 책을 읽는 손주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손수건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긴 장마  (0) 2020.08.17
생각하는 재미  (0) 2020.08.09
서울 집값  (0) 2020.07.06
해 뜨는 집  (0) 2020.06.23
여기 있는 게 좋아  (0) 2020.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