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생각하는 재미

샌. 2020. 8. 9. 12:01

바둑만큼 생각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놀이도 없다. 내가 바둑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생각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수칙은 바둑에도 예외가 아니다. 어려운 장면을 만나서 장고를 하면 빨리 두라고 채근하거나, 심하면 짜증을 낸다. 같이 느긋하게 바둑을 둘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어렵다.

 

요사이는 거리에서 기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인터넷 바둑이 대세다. 인터넷 바둑의 특징은 속전속결이다. 대부분 제한시간이 5분, 아니면 10분이다. 이 정도면 금방 제한시간이 지나가고 바로 10초 초읽기에 들어간다. 10초에 한 수씩 두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에 쫓기며 허둥대다 끝난다. 속기 바둑은 실력보다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제한시간 20분으로 대국을 신청하면 응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에게는 사실 20분도 짧다. 인터넷 바둑은 끝내 적응이 안 된다.

 

바둑만이 아니라 무엇이나 깊이 생각하기 싫어함은 현대인의 특성인 것 같다. 글도 짧고 간명해야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다. 글이 길면 아예 쳐다보지를 않는다. 블로그가 시들해지면서 트위터 같은 호흡이 짧은 SNS가 대세로 되었다. 요사이는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올리고 공유하는 틱톡이 인기인 것 같다. 문자보다는 영상, 그것도 짧고 간결해야 한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며 유희화되었다. 사유보다는 재치가 우선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중요한 대국은 제한시간이 10시간인 경우도 있었다. 바둑 한판 두는 데 이틀이 걸렸다. 대국자야 몰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지만,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은 어땠을까. 한 수 두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조급했다면 도저히 지켜보지를 못했을 것이다. 같은 바둑이지만 10시간 바둑은 10분 바둑과는 차원이 다르다. 잘 익은 된장 맛과 즉석식품의 차이랄까. 그때는 바둑을 넘어서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도 있었던 게 아닐까.

 

죽기 전에 한번 둬보고 싶은 바둑이 있다. 하루에 한 수만 두는 1일1수 바둑이다. 서로 대면하고 두는 바둑이 아니다. 바둑판에 좌표가 있으니 자기가 놓은 위치를 전화로 알려만 주면 된다. 바둑 한판 두는데 거의 1년이 걸릴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1년 동안 둔 한판의 바둑, 무척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이런 뜻에 동의해 줄 상대를 만나는 일이다.

 

바둑의 세계만이 아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면서 모든 면에서 속도가 우선시되고 있다. 깊은 사고보다는 신속한 정보가 중요해졌다. 미래 인류는 머리가 커지고 몸은 가늘어지는 가분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견이 있었다. 옛날이야기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인간의 두뇌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기능은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품만이 아니라 일회성 콘텐츠를 소비하는 종족으로 변해가고 있다.

 

400년 전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미래 세계에는 이 명제가 다시 어떻게 바뀔지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앞으로 몇 세대에 한정될지 모른다. 내 스타일에 맞는 바둑 상대가 없다고 너무 나간 생각인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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