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질긴 장마

샌. 2020. 8. 17. 10:37

2020년은 코로나와 함께 질긴 장마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중부 지방의 장마는 어제 8월 16일에야 끝났다. 6월 24일부터였으니 무려 54일간 지속한 최장기간 장마였다. 그전 기록은 2013년의 49일이었다(6.17~8.5). 또한 장마가 가장 늦게 끝난 해로 기록이 남게 됐다. 1987년 장마가 8월 10일에 끝났는데, 그때보다 무려 6일이나 더 오래 끌었다.

특히 7월 하순부터 장마 끝날 때까지는 거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내리 비가 내렸다. 땡볕 더위는 피했지만 후덥지근한 습도 높은 날씨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올 장마의 전국 누적 강수량은 920mm로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질긴 장마와 비로 인한 피해도 컸다.  

마치 전염병과 기상 이변은 연관되어 있다는 걸 하늘이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오래전부터 미래의 인류는 전염병과 이상 기후로 시달림을 받을 것이라는 예견이 많았는데 현실로 닥친 느낌이다. 그때는 "기후 변화가 일어나야 뭐 대수겠어" 했고, 전염병도 "중세도 아닌데, 뭐" 했다. 그런데 아니다. 이 둘은 은근히 인간을 괴롭히며 질식사시키는 것 같다.

이상 기후는 수십, 수백 년 동안 인간의 탐욕이 누적된 결과다. 하루아침에 개선될 리 만무하다.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정신 차린들 효과는 몇십 년이 지나야 나타난다. 그럴 만큼 호모 사피엔스가 지혜로운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인류는 종말을 향해 가야 하지는 않은지 요사이는 불길한 생각에 자주 잠긴다.

과학 기술만 기형적으로 발전하면 결국 호모 사피엔스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인간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어야 전염병이나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지구가 망가지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신 종족으로의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인류의 집단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무척 착잡하다. 장마가 물러가니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조짐이다. 먹고 살기는 자꾸 힘들어지고 주름살은 늘어나는데, 어떤 사람은 이런 와중에도 어떻게 재산을 늘리고, 어떻게 즐길까를 고민한다. 공동체마저 둘로 갈라지면 대책이 없다.

2020년의 질겼던 장마가 끝나기 하루 전(8.15) 모습을 기념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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