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진보 정권을 자칭하는 무리가 집권하면 부동산이 한바탕 춤을 춘다.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고 주로 서울에 국한되지만, 서민을 위하겠다는 정부가 서민의 가슴에 허탈과 좌절의 대못을 박고 있다. 도대체 문재인 정권이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 더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청와대 참모부터 다주택을 처분하겠다고 한 약속이 언젠데 아직도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다가 다급해지니 무슨 수석이라는 자는 두 채 중 강남 집은 그대로 두고 지방에 있는 집을 팔겠다고 한다. 눈속임도 격이 있어야지, 이런 질 낮은 코미디는 없다. 구중궁궐에 있는 몇 명이서 집이 한 채니 열 채니 싸우지 말고 정책이나 제대로 세워라. 국민은 속으로 비아냥거린다. "민나 도로보데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특성상 부동산에 쏠릴 수밖에 없다. 재산 격차의 대부분이 부동산 때문이고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대표적인 게 부동산이다. 시장 자율에 맡긴 부동산은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낳는다. 상대적 박탈감이 제일 심한 게 부동산일 것이다. 사회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과감한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 투기꾼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부동산을 통한 이익은 환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토지나 주택 수 제한도 필요하다. 다주택자에게는 보유세를 왕창 물려야 한다. 동시에 공공주택을 확대해서 집 소유에 대한 필요성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임시처방의 땜질로 투기꾼이나 시장을 이길 생각은 아예 말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 집권을 꿈꾼다면 국가를 개조할 계획까지 세워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더 이상 정치꾼들의 희롱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20년 전에 어떤 사연으로 서울에 있던 집을 팔았다.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하다가, 10년 전에 경기도에 아파트를 한 채 장만했다. 그 아파트 가격은 아직도 분양가에서 한참 밑이다. 아파트 값은 같은 수도권이라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내 부동산 재산은 20년 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반면에 계속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부동산값 폭등의 혜택을 몇 차례 통과하고 지금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게 부자(?)가 되어 있다. 요사이 배가 아파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이유가 딴 데 있는 게 아니었다.
좋은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편안함이 물질적 부유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쨌든 서울 집값은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며칠 지나면 몇 억씩 올랐네, 라는 보도에 열 받을 사람이 어찌 나만이겠는가. 우리가 다시 봉건사회로 회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어제 한겨레신문에서 강준만 교수의 칼럼을 보았다. 제목이 '합법적 약탈'이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합법적 약탈 / 강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내 집 마련해 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 월세가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뺏어가는 약탈보다 더 나쁜 약탈이다. 폭력적 약탈을 저지른 악한은 그 정체가 분명하고 처벌 받을 수 있지만, 합법적 약탈엔 지목할 수 있는 행위 주체마저 없어 '피해자 탓하기'라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합법적 약탈은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정부를 약탈의 주범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이 주범이 처벌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은 그저 무능하다는 수준의 비판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이런 합법적 약탈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진보와 보수 정권이 번갈아 가면서 합동으로 발전시켜 온 약탈 체제이기에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질 건 없다. 한국의 정치판과 고위 공직은 주로 이런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약탈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누구 말마따나 "정치는 원칙의 경쟁으로 위장하는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싸움의 와중에서 '정의' '공정' '평등'과 같은 아름다운 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한 기만적 언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그런 합법적 약탈이 일어날 수 없는 아름다운 공간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지방이다. 물론 모든 지방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지방에선 부동산 가격 폭등보다는 하락이 주요 이슈가 되는 건 분명하다. 부동산 가격은 일자리 문제와 직결된다. 일자리가 많은 곳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적은 곳의 부동산 가격이 내리는 건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의 무능은 이 초등 상식을 위반하면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큰소리를 쳐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 정책은 국가균형발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는데 왜 축포를 터뜨리면서 자축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빈말이래도 2년 전 국가균형발전 비전 선포식에서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을 외쳤던 것에 감사해야 할까? 차라리 솔직하게 국가균형발전은 없으니 헛꿈 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더 나은 게 아닐까? 적어도 기만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나는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에 관한 언론 기사들을 열심히 찾아 읽으면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맹렬한 비판과 더불어 미시적 분석은 뛰어날 망정,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는 거시적 분석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일자리와 더불어 한국형 계급 투쟁의 최고 관문인 '명문대학'을 집중시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이런 일련의 정책과 서울 부동산 가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는 건가?
지금 나는, 정부가 문자 그대로의 '서울 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서울의 언론이 그런 정책 방향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다.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일시적으론 주춤할 수 있어도,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을 외면하는 반쪽짜리 분석과 비판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이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이런 부동산 약탈 체제를 계속 고수한다 하더라도, 누구건 진실을 알고 살아야 할 권리는 있는 게 아닌가?
시로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영국 시인 세실 데이루이스는 "정직한 꿈을 꾸며 살았던 우리가 나쁜 사람들을 더욱 나쁜 사람들과 비교하여 옹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논리다"라고 개탄했다지만,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정치의 목적은 '반대편 타도'로 전락하고 만다. 잘못된 모든 것은 '반대편 탓'으로 돌리고, 우리 편에 대한 내부 비판은 무조건 '배신'과 '변절'로 매도하는 광란의 수렁에선 합법적 약탈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설 땅이 없다.
나는 평소 "전주는 천국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축복을 누리는 등 그만큼 지방의 삶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사적인 이야길 하는가? 나를 생각해 "지방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조언하는 분들이 많이 때문이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처럼 보인다나. 그럼 어떤가. 불평불만을 할 시간조차 없이 전쟁하듯 고되게 살아가는 합법적 약탈의 피해자들을 위해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말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