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여기 있는 게 좋아

샌. 2020. 6. 13. 17:19

텃밭을 부치는 이웃이 세 집이나 있다. 덕분에 야채는 떨어지지 않고 얻어먹는다. 연초에 아내가 우리도 텃밭을 하나 해 볼까, 라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 여기는 조건이 좋다. 집 가까이에 노는 땅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경계를 긋고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작물 가꾸는 것도 시들해졌다. 귀찮기도 하고 무엇에 매인다는 게 싫다.

 

대신 이웃이 부치는 텃밭은 가끔 들린다. 오늘 오후에 텃밭에 나가는 이웃을 따라나섰다. 방 한 칸 정도 되는 넓이의 땅뙈기에는 상추, 배추, 쑥갓, 완두콩, 고추, 딸기가 심겨 있다.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텃밭들이 있고, 가끔 밭에 나와 있는 다른 사람과도 만난다.

 

오늘은 할머니 한 분이 옆에서 일하고 계셨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이웃분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언제부터 나오신 거예요?"

"응, 아침부터 나와 있어."

"뜨거운데 들어가시지 어떻게 하루 종일 있어요?"

"아니야. 여기 있는 게 좋아."

 

할머니의 사정에 대해서는 뒤에 이웃분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장가간 아들집에 와서 손주를 돌봐준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맞벌이로 둘 다 직장에 나가니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했나 보다. 할머니는 손주 육아와 함께 살림도 맡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주말이 되면 아들과 며느리가 집에 있으니 할머니는 같이 있는 게 눈치가 보였으리라. 할머니 말로는 저희끼리 놀라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텃밭에 나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선지 할머니 텃밭은 풀 한 포기 없이 깔끔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에게 정을 붙일 곳이 어디 있겠는가. 손주를 돌보는 시간 외에 유일한 소일거리는 텃밭이다. 친구도 없는 할머니에게 텃밭은 유일한 낙인 것 같다.

 

노년에 들어서서 손주의 짐을 진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할머니처럼 자식 집에 사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자유를 구속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손주를 보는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나 속내도 그런지는 의문이다. 자식한테는 본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No!"라고 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손주를 보는 일은 굉장한 중노동이다. 허리와 어깨에 탈이 나는 경우도 보았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게 보통의 현실이다. 내 아는 사람 한 분은 자식이 임신해서 나중에 손주를 돌봐야 할 것 같으니까 아예 멀리 이사를 가버렸다. 부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분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제일 효자는 외국에 나가서 독립해 사는 자식이 아닐까. 할머니 집안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를 위해 집에서 나와 휴일을 텃밭에서 보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애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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