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샌. 2020. 10. 3. 12:52

박찬국 교수가 쉽게 풀이한 하이데거 철학의 해설서다. 하이데거 하면 실존철학자로만 알고 있지 그분의 사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 소로우나 동양의 선불교, 노장사상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삶은 왜 짐이 되는가>는 전체가 1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과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한 문장을 보면 하이데거 철학의 대체적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장 하나하나가 모두 묵직한 주제들이다.

 

1장, 고향 상실의 시대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대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기와 질시 그리고 경쟁이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사람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마음은 한없이 허젆고 외롭다.

 

2장, 과학과 기술에 대한 우상 숭배

서양철학 전통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인간 이해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과학기술문명이다. 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과학기술문명의 주체라고 자부하며 살지만 실은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3장,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공허한가

오늘날 우리는 권태와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극적인 것에 탐닉하거나, 남의 흠을 들추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가십거리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두고 "오늘날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존재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4장, 근본기분이라 무엇인가

존재 상실의 공허함은 세계와 사물을 경이롭게 봄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세간의 일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잡담에서 벗어나 사물과 세계의 신비에 조용히 마음을 열 때 사물들은 무한한 깊이를 갖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삶은 진정으로 충만해진다.

 

5장,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한 이유는 '나'라는 고유한 존재가 그들이 평가하는 대상으로 완전히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호젓이 피어 있는 장미처럼, 우리의 존재도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6장, 인간은 왜 불안을 느끼는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불안'이라는 기분으로 찾아와 일상적의 삶의 자명성을 파괴한다. 그제야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자신과 마주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의미로 충만한 삶도 있을 수 없다.

 

7장,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덧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의 삶이란 고독과 허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하이데거는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한다.

 

8장,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의 본질은 세계와 사물의 내밀한 통일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시가 바로 진정한 언어라고 말한다. 시인은 침묵 속에서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어를 통해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한다. 시가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하는 한, 시는 항상 자신 안에 꿰뚫을 수 없는 깊이와 신비를 간직하게 된다.

 

9장, 건축의 본질과 시적 사유

하이데거가 생각한 건축의 본질은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건물을 더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시골의 작고 낡은 농가라 하더라도 '사역'으로서의 세계가 자신을 환히 드러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 건축의 본질이다.

 

10장, 자연은 위대한 사원이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 파악과 기술적인 지배를 통해 행복을 실현하려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이러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적인 대용재를 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소박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할 때 우리 삶이 진정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시대가 전대미문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독과 무력, 허무감에 시달리는 시대다. 인간은 오직 욕망의 덩어리로 존재할 뿐이고, 사물들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궁핍한 시대'로 규정했다. 이런 인간 소외 현상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시적 정신과 경이감을 유난히 강조한다. 경이라는 기분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달리 경험할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용어가 '사역(四域)'이다. 경이라는 기분 속에서 세계는 사역으로 나타나는데, 사역이란 대지, 하늘, 죽을 자들, 신적인 자들을 가리킨다. 이 네 요소가 거울이 서로를 비추듯 조응하며 어울려 있는 상태가 세계의 근원적인 모습이다.

 

인공물에 대한 소유욕에서 벗어나 세계와 사물의 경이로운 존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이 광기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소유와 향락에 대한 욕망 때문에 소박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현대문명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하이데거는 진단한다. 우리 삶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경이와 기쁨을 느끼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단순 소박한 정신과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이데거는 독일 남부의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 속 산장에서 기거하며 그의 철학을 만들어나갔다. 베를린 대학으로부터 두 번에 걸친 교수직 제의를 거부하며 대부분의 연구와 저술을 산장에서 했고 시골 사람들을 사랑했다. 삶으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이데거가 기술문명을 송두리째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주(主)과 되고 종(從)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멋진 말을 하나 소개한다.

 

"깊은 겨울 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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