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청계산길을 걷다

샌. 2020. 10. 23. 18:52

가을이 깊어가는 날, 탁구 모임에서 청계산을 걸었다. 아직 탁구장에 들어가기는 무리이고,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월 1회 모임이 당분간은 야외 걷기로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다섯 명이 청계산입구역에서 10시에 모여 원터골로 올라갔다. 평일이지만 서울에 붙어 있는 산이라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대부분 산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떠들며 올라가다 다른 사람한테 주의를 듣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얘기도 소곤소곤 나누었다.

참나무가 많은 청계산 단풍의 주색은 노랑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맛이 있다. 옥녀봉능선을 걷는 산길은 포근하고 편안했다. 양재화물터미널로 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산길 걷기를 마치고 양재역사거리로 나와 뒷시간을 가졌다. 여러 차례 선전했던 양재닭집의 치킨 맛을 보여줄 기회가 모처럼 찾아왔다.

청계산으로 갈 때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출근시간이 살짝 지났는데도 객실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고, 하나 같이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열차 달리는 소리 외에 인간의 소리나 동작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상의 풍경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굉장히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마치 종말을 그린 SF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호기심에 내 주변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약 70명 정도 되었는데 휴대폰을 안 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딱 4명이었다. 그중에 책을 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무척이나 신기하고 고마웠다. 휴대폰이 생기고 나서 인간의 삶이 너무 많이 변했다. 어린 아이거나 어른이나 그 마법의 화면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내 눈에는 코로나보다 지하철 안의 풍경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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