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요즘은 나 홀로 / 이태수

샌. 2021. 5. 11. 11:37

요즘은 혼자만 있을 때가 잦아졌다

나 홀로 느긋하게

온갖 생각의 안팎을 떠돈다

 

거기에 날개를 달아보거나

내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 때가 잦다

 

빈 집에서 빈 방 가득

생각들을 풀어내다 거둬들이다 하면서

나 홀로 술잔을 기울일 때가 좋아졌다

 

혼자 마신 술에 젖어

술이 나를 열어주는 길을 따라

나 홀로 유유자적 거닐 때가 좋다

 

적막이 적막을 껴입고 또 껴입으면

혼자 그 적막을 지그시 눌러 앉히곤 한다

 

눌러 앉혀 다독이면

그윽하게 따뜻해지는 적막이 좋다

나 홀로,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 요즘은 나 홀로 / 이태수

 

 

대상포진 걸린 지가 세 주가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포진이 생긴 얼굴은 전류가 흐르는 듯 지릿지릿하다. 마치 폭격을 당한 느낌이라 '포진'의 '포(疱)'가 나에게는 '포(砲)'로 읽힌다. 근 한 달째 바깥사람을 못 만나고 있다. 얼굴을 맞대는 사람은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다. 코로나가 아니라 대상포진 격리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온전한 '나 홀로' 상태다.

 

스스로 자족하는 나 홀로가 아니라 강제로 유폐 당한 나 홀로는 쓸쓸하다. 특히 몸이 아프면 서글프다. 외딴곳에 홀로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다. SNS에서는 아랑곳없이 잔칫집 같은 소식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뭐가 궁금한지 나는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얼마 전에 인터넷 카페에 몇 개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나름으로는 그동안 격조했던 사람들과 소통해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잠깐의 호기심을 보이는 척할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내 발버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한심한 놈아!", 이렇게 일갈하며 나는 제정신을 차린다.

 

문을 닫아야 나를 만난다고 했다. '그윽하게 따뜻해지는 적막'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대상포진일지라도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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