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슬퍼할 수 없는 것 / 이성복
히말라야와 산티아고를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과는 달라졌다. 전에는 마음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몸의 문제다. 12년 전에 찍었던 히말라야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곳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인한다.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바로 지금 내 심정이다. 이런 경계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종내는 슬퍼할 수조차 없는 때가 찾아올 것이다.
늙음이든, 병이든, 집안의 변고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대상포진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준동에 생활 전체가 맥없이 허물어진다.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 그 하찮음을 안다면 무엇으로 슬퍼해야 하는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으려나.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은 나 홀로 / 이태수 (0) | 2021.05.11 |
---|---|
돌아오는 길 / 박두진 (0) | 2021.05.02 |
사는 법 / 홍관희 (1) | 2021.04.18 |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 임복순 (0) | 2021.04.12 |
비망록 / 문정희 (0) | 2021.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