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청소를 끝마치고 / 강소천

샌. 2021. 5. 27. 10:12

책상 걸상을 죽 뒤로 밀어 놓고

먼지털이로 구석구석 먼지를 떨고

비로 박박 마루를 쓸고

물로 좍좍 걸레질을 하고

 

책상 걸상을 제자리에 나란히 해 놓고

맑은 물을 길어다가

교탁과 교단을 다시 닦는다.

 

비뚜러 놓인 교탁을 바로 잡다가

나는 문득 선생님이 되어 보고 싶었다.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언제 와 계셨는지 교실 문 앞에

담임 선생님이 서 계셨다.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다가

"선생님 청소를 다 했습니다."

 

선생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그리고 선생님은

교사실로 가신다.

 

복도를 쓸던 동무들과

유리를 닦던 동무들이

한꺼번에 "와아" 하고 웃어 버렸다.

 

교사실로 가시던 선생님도

뒤돌아 보시며

다시 한번 빙그레 웃으시었다.

 

- 청소를 끝마치고 / 강소천

 

 

내 소년 시절은 강소천 선생의 동시를 읽으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소천, 윤석중 선생의 동시와 동요, 그리고 마해송 선생의 동화를 좋아했는데 세 분의 성함만 선명할 뿐 각 작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하다. 선생의 동시를 베끼고 따라서 흉내내기도 한 노트가 있었는데 보물단지처럼 아끼다가 군대에 다녀온 동안에 사라져 버렸다. 

 

6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선생의 동시를 보니 그 시절이 아련하다. 너무나 멀리 왔는지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가 이 세상 일을 마치고 내 본향으로 돌아가라는 허락으로 자꾸 들린다. 그렇다. 하늘에서 지켜보시는 이가 계시다면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무개야, 수고했소. 지상에서의 삶은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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