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 숲 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으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리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조용한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의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불어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어둠 속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산기슭 싸리나무 끝에
굴뚝새들의 단음의 노래를 리본처럼 달아둔다
인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간 다음에 이 지상에 남을 것들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오리나무 뿌리 뻗는 황토 기슭에
그들의 꿈과 노래를 보석처럼 묻어 둔다
-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창 밖 뒷산에서 검은등뻐꾸기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아침이다. 나도 리듬 따라 '홀딱벗고~' 라고 박자를 맞춰 준다. 노랫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걸 보아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가 보다. 어렸을 때부터 소리만 들었을 뿐이지 아직 검은등뻐꾸기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굴뚝새도 마찬가지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시에 등장하니 많이 궁금해진다. 꼭 굴뚝새만이겠는가. 새들은 다 조그맣게 살고 작은 꿈을 꾼다. 그리고 작은 노래를 부른다. 작은 희망, 작은 기원이 우리의 미래를 향한 작은 평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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