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쇠비름 비빔밥 / 조성순

샌. 2021. 6. 29. 15:28

입에 녹는 안심살, 감칠맛 돌가자미, 세상의 별난 음식 먹어봐도 몇 번이면 물리고 말지. 고구마밭 지심맬 제 이랑 고랑 지천으로 자라 뽑아도 뽑아도 질긴 생명력으로 힘들게 하던 쇠비름, 다른 놈들은 뽑아서 흙만 털어놓으면 햇볕에 말라 거름이 되는데 이놈은 말라죽기는커녕 몇 주 후라도 비가 오면 어느새 뿌리를 박고 살아나지. 하는 수 없이 밭고랑 벗어난 길에 던져놓아 보지만 오가는 발길에 수없이 밟혀 형체도 분간 못할 지경이 되고서도 비만 오면 징그럽게 살아나는, 시난고난 앓고 난 뒤, 먹고 싶었다. 푹 삶은 쇠비름, 된장 고추장 고소한 참기름으로 비빈

 

- 쇠비름 비빔밥 / 조성순

 

 

쇠비름을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중학생 시절 읍에서 외할머니와 둘이 살 때, 여름 별미는 된장으로 무친 쇠비름이었다.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비벼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 약간 미끈덩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독특해서 외할머니 따라 나도 덩달아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다. 쇠비름은 귀한 나물이 아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밭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잡초다.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생명력이 대단한 식물이다. 시난고난 앓고 난 뒤 먹고 싶었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쇠비름을 먹을 기회가 드물었다. 언젠가 아내에게 쇠비름을 부탁했는데 예전 같은 맛이 나지 않았다. 아내는 쇠비름을 먹어본 경험이 없었다. 요사이는 밭에서도 옛날처럼 쇠비름이 흔하게 보이지 않는다. 미리 제초제를 뿌리기 때문에 아예 나지 않는지 모른다. 어제 텃밭에 나갔다가 아내의 호미에 잘려나가는 쇠비름 하나를 봤다. 많았다면 나물로 무쳐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 많던 쇠비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는 다시 맛보고 싶은 쇠비름 비빔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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