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것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
- 나쁜 짓들의 목록 / 공광규
요즈음 정치에 입문한 어떤 분이 '십 원 한 장' 남에게 피해를 끼친 일이 없다고 강변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산다는 게 뭔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리 당당하게 발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람살이를 어찌 법률 조문으로만 재단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 자격시험이 있다면 시적 감수성 여부도 반드시 체크해야 할 것이다. 철면피들이 나대는 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세속적인 성공이란 어쩌면 시인이 말하는 '나쁜 짓'을 많이 해야 얻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돌멩이 하나 옮기는 데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난폭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거리낌 없이 합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때보다 시인의 감성이 필요한 시대다. 시인의 감성이란 나쁜 짓이 나쁜 짓임을 아는 일이다. 곧 우주의 모든 존재에 대한 섬김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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