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 메리 올리버

샌. 2021. 7. 24. 12:01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 메리 올리버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 1935~2019)가 2년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이제야 듣는다. 메리 올리버는 자연의 경이와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사는 기쁨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시인의 산문집 한 권과 시 몇 편을 접한 게 전부지만 시인의 이름은 곱게 기억되고 있다. 

 

아마 이 시는 소녀 시절을 추억하며 쓴 것 같다. 요사이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여름이 주는 선물을 만끽이나 할까. 차라리 우리의 소년 시절이 축복이었던 게 아닐까. 여름방학이면 교실에서 벗어나 땡볕 아래서 천방지축 뛰놀았다. 학원이 없었고 공부하라고 간섭하는 어른도 없었다. 그때는 강변에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사나워져서 그런지 울퉁불퉁한 돌이 덮고 있다. 강물이 흐르지만 누구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달력이 여름을 말하면 이젠 아이나 어른이나 에어컨 밑으로 들어간다. 강물이 흐르고, 굴뚝새가 노래하고, 꽃들이 빛나지만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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