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경작 본능을 무슨 수로 말릴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깨 농사를 시작했다. "가만 두어라.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10년 전부터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이다.
밭은 집에서 1km나 떨어져 있고 산자락도 넘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나한테도 숨이 차다. 밭도 500평이나 된다. 그런데도 매일 왕복하며 가꾸어놓은 밭이 정원처럼 말끔하다. 관리하기 쉬워 들깨를 심는다지만 아흔 넘은 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도 당신은 "내 좋아서 하는 일, 끄떡없다!" 하신다.
밭일보다도 오가는 과정이 걱정이다. 경사진 산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찌될까. "넘어지려고 하면 평지에서도 넘어진다. 산길은 조심해서 오히려 괜찮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농사 욕심은 도저히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들깨 심는 일을 도와주러 고향에 내려갔다. 이미 반 넘게 일이 끝나 있었고, 마무리 작업을 같이 했다. 나는 노동 강도가 어머니의 반의반도 안 되었지만 땀이 쏟아지고 모기가 달려들어 너무 애먹었다. "호미 한 번 안 잡아본 놈이 뭔 일을 한다고." 그래도 아들이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어머니에겐 힘이 되리란 걸 잘 안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농사에 집착할까. 평생을 농사 짓던 삶의 관성일까. 아니면 잊고 싶은 게 많은 걸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지루해서 테레비 앞에만 누워 있다. 그런데 밭에 나오면 힘이 펄펄 나고 좋다." 참 다행이다 싶다가도 안타깝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이런 시간도 오래 누릴 수 없음을 잘 안다.
나는 3박4일 동안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들깨 심고 감자 캐는 등 밭일 시늉을 해 봤다. 남는 시간에는 책 보고 마을 산책을 하며 보냈다. 장마철인데 다행히 비는 피했다.
마을 앞을 지나던 철길이 걷히고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 고향에 생긴 제일 큰 변화다. 철로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