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화가 난 물까치

샌. 2021. 7. 4. 11:29

길을 걷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물까치 유조를 보았다. 이제 막 둥지에서 나온 듯 날개를 파닥이지만 날지는 못했다. 고개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물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끼를 낳고 길렀을 암수 두 마리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지나가지 않을래?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 알겠다. 네 새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러냐?"

새끼 때문에 애타는 물까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물까지 유조

 

그런데 그중 한 놈이 나를 따라오며 계속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무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깍~ 깍~, 더 멀리 안 갈래?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약 50m는 따라왔으리라. 집요한 녀석이었다. 아마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컷이 아니었을까.

"그래, 더럽다 더러워. 이쁘다고 사진 찍어줬더니 고작 이런 대접이냐?"

 

화난 목소리로 협박하며 나를 따라온 사나운 물까치

 

새들의 새끼 보호 본능은 대단하다. 두 주쯤 전인가, 역시 길을 가는데 흰뺨검둥오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갑자기 내 앞에 튀어나오더니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비틀거렸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도로 옆이라 차에 치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풀섶에 흰뺨검둥오리 새끼 네댓 마리가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아차, 이것이 바로 새들의 의태 행동이구나. 의태는 새끼로부터 침입자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일부러 다친 척하며 시선을 빼앗는 행위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때 본 어미 흰뺨검둥오리의 행동이 너무 간절하고 애처로웠다. 나는 무안하고 미안해서 속히 자리를 피해 줬다. 어미는 그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와서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장면을 만나면 숙연해진다. 새끼를 낳아 후손을 남기려는 생명체의 본능은 지극하다. 성(性)과 사랑에 관한 욕구도 결국은 여기에 수렴한다. 제 새끼를 위해서라면 무지막지할 정도로 가차 없는 행동도 한다. 새나 다른 동물은 본능이 원초적으로 드러나는데 비해 인간은 복잡다단하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가식과 위선의 동물이다. 새를 보면서 그 단순한 삶이 부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빛공원으로 쫓겨나다  (0) 2021.07.16
어머니와 들깨를 심다  (2) 2021.07.09
6월의 새  (0) 2021.07.02
시도(矢島) 걷기  (2) 2021.07.01
텃밭 네 이랑  (1)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