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물까치 유조를 보았다. 이제 막 둥지에서 나온 듯 날개를 파닥이지만 날지는 못했다. 고개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물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끼를 낳고 길렀을 암수 두 마리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지나가지 않을래?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 알겠다. 네 새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러냐?"
새끼 때문에 애타는 물까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중 한 놈이 나를 따라오며 계속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무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깍~ 깍~, 더 멀리 안 갈래?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약 50m는 따라왔으리라. 집요한 녀석이었다. 아마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컷이 아니었을까.
"그래, 더럽다 더러워. 이쁘다고 사진 찍어줬더니 고작 이런 대접이냐?"
새들의 새끼 보호 본능은 대단하다. 두 주쯤 전인가, 역시 길을 가는데 흰뺨검둥오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갑자기 내 앞에 튀어나오더니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비틀거렸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도로 옆이라 차에 치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풀섶에 흰뺨검둥오리 새끼 네댓 마리가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아차, 이것이 바로 새들의 의태 행동이구나. 의태는 새끼로부터 침입자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일부러 다친 척하며 시선을 빼앗는 행위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때 본 어미 흰뺨검둥오리의 행동이 너무 간절하고 애처로웠다. 나는 무안하고 미안해서 속히 자리를 피해 줬다. 어미는 그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와서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장면을 만나면 숙연해진다. 새끼를 낳아 후손을 남기려는 생명체의 본능은 지극하다. 성(性)과 사랑에 관한 욕구도 결국은 여기에 수렴한다. 제 새끼를 위해서라면 무지막지할 정도로 가차 없는 행동도 한다. 새나 다른 동물은 본능이 원초적으로 드러나는데 비해 인간은 복잡다단하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가식과 위선의 동물이다. 새를 보면서 그 단순한 삶이 부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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