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30%

샌. 2021. 10. 16. 15:54

당구 모임이 있는 날 저녁에는 편의점 야외 탁자에서 캔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술집보다 경제적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밀폐된 실내보다 안전해서 좋다. 출입구 옆이라 옹색하긴 하나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유럽의 야외 카페가 부럽지 않다.

 

그렇게 동기들끼리 만나면 옛날 학창 시절의 추억담이나 앞으로 살아갈 노년의 삶 따위에 대해 잡담을 나눈다. 건강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등산 모임이 하나둘씩 없어진다. 등산 공고를 하면 전에는 북적댔는데 이제는 서넛밖에 나오지 않으니 산 대신 둘레길 같은 수월한 걷기로 대체된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제는 한 친구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인구 통계로 볼 때 남자 80세가 되면 생존율이 30% 정도라는 것이다. 이미 70대로 접어든 우리가 곧 마주칠 현실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다섯 중에서 셋은 이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캔맥주를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산다는 게 쓸쓸하고 허망하다. 인연의 줄도 늙으면 삭고 헐거워진다. 가까운 친구도 차츰 전화 연락이 뜸해지다가 잊히게 된다. 코로나가 인간 관계의 해체를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게 되는가 보다. 일가친척 형제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인연줄 끊어지는 소리가 가을 찬바람처럼 써늘하다.

 

점차 혼자가 되다가 마지막에는 요양원 신세를 지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제 몸 일으키지도 못하고 요양원에서 누워만 지낸다면 살아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먼저 간 친구가 행복했다고 한숨을 쉬게 될지도 모른다. 그마저 의식하지 못하고 똥인지 된장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대체로 인생의 끝은 초라하고 비루하다.

 

얼마 전에 전 직장 동료였던 H 선배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민하면서 존경을 받던 선배였는데 지금은 뇌에 이상이 생겨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 있다. 70대 후반까지도 산을 즐기던 분이었다. 같이 산행도 여러 차례 했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이런 비보를 듣는 빈도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내 미래가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일까. 그래서 한 가닥 희망이라도 지킬 수 있는 걸까. 해는 저물고 지상에서 남은 인연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자고 건배를 하지만 쓸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30%'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맞은편 친구의 주름진 얼굴이 자꾸 흐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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