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바깥 잠과 수면제

샌. 2021. 11. 17. 11:06

어제저녁에는 9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8시였다. 10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다. 어제는 특별한 날이 아니다. 보통 저녁 10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난다. 나는 하루에 아홉 시간 정도 잠자는 '롱 슬리퍼(long sleeper)'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데 나는 아직 큰 변화가 없다. 아홉 시간 동안 내내 자지만, 어쩌다 오줌이 마려워 한 번쯤 깰 정도다. 이만하면 잠 복은 타고난 것 같다. 넌 심간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하지만 나라고 세상 살아가는 염려나 스트레스가 덜한 건 아니다. 타고난 체질일 뿐이다.

 

그런데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밖에 나가서 잘 때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달라진 잠자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베개 높이가 달라지니 자꾸 뒤척이게 된다. 조명이나 이불 감촉도 생소해서 신경이 쓰인다. 전에는 아무 데서나 눕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밖에 나갈 때면 꼭 자기 베개를 들고 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심정이 이제 이해가 간다.

 

최근에 나흘간 친구 집과 모텔에서 숙박할 일이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나는 다음 날 활동이 크게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아내의 수면제를 가져갔고, 나흘 모두 수면제 신세를 졌다. 약의 도움을 받아서 일정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다. 나는 수면제 내성이 없어선지 적은 양에도 금방 효과를 본다.

 

잠은 심리적 영향이 상당히 큰 것 같다.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염려가 좋은 잠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소가 아닐까. 내 경우도 밖에 나가게 되면 지레짐작으로 우선 잠부터 걱정한다. 수면제를 챙기는 행위가 이미 잠을 스스로 훼방 놓고 있는 꼴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작동해서 상황을 자꾸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은 단 잠이 필요한 걸.

 

이번 대학 동기들과의 진도 여행에서는 여덟 명이 방 하나와 거실에서 나누어 자야 했다. 시골집이니 욕실도 하나였다. 한 친구는 당구 치러 읍에 나가더니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모텔에서 혼자 잔 것이다. 자기는 여행에서 우선순위 첫 번째가 편안한 잠자리라고 했다. 그게 안 되면 여행이 망친다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인 것 같다.

 

앞으로 더 늙어갈수록 육체의 기능 저하에 따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잠에서도 서서히 감지된다. 롱 슬리퍼이긴 하지만 아무리 푹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옛날처럼 개운하지 못하다. 그때는 기지개를 켜고 벌떡 일어나면 상쾌한 아침이 열렸다. 그러나 지금은 침대에서 10분 정도 뒤척이다가 고장난 기계를 다루듯 조심스레 일어난다. 느릿느릿 맨손체조로 몸을 풀지만 영 시원찮다. 누구나 감내하며 가야 할 길, 울퉁불퉁한 내리막길을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면서 조심스레 가야 할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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