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샌. 2021. 12. 13. 13:54

올해 수능인 생명과학(2)의 한 문제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수험생들에게는 생명과학 점수가 빠진 성적표가 발부되었다. 며칠 전에는 외국 과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터무니없이 어렵고 푸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수능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일부 영어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미국 사람도 못 푼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다. 수능이 오로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아서 출제한다. 아마 이번의 생명과학 문제도 그런 유형에 들어갈 것이다.

 

수능 문제는 실생활은 차치하고 대학 공부를 할 자질 측정으로부터도 동떨어져 있다. 고등학생들은 오직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쓸데없는 잡다한 문제 풀이로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 시스템에 기생해서 온갖 사교육과 학원이 번창한다. 문제를 푸는 테크닉 위주인 사교육이 교육의 주도권을 잡았고, 공교육은 무너졌다. 교육만큼 투자 대비 비효율적인 분야도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교육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교육과정평가원의 대응도 문제다. 오류가 있는 문제를 출제하고는 어쨌든 정답을 찾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 나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지문에 나오는 조건대로 풀면 동물 수가 마이너스 값이 나온다고 한다. 즉, A 동물 30마리, B 동물 -10마리로 나오니 총 수는 20마리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교육과정평가원이 논란이 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정답을 고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수능의 원래 취지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교육 개혁이 왜 우리 사회의 담론이 되지 않는지 의아하다. 대선 후보한테서도 교육에 관한 문제 제기는 없다. 문재인 정권이 적폐 청산을 내세우고 임기 내내 시끄러웠지만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잠잠했다. 아예 관심 밖이었다. 전교조가 죽으니 교육을 화두로 던지는 집단이 없다. 교육 시스템의 판을 통째로 갈아엎을 입시 제도의 개혁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 개혁은 독일식 모델이다. 20여 년 전 독일에 한 달간 교육 연수를 가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방문하고 독일의 교육 제도를 접했던 경험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걸 바탕으로 생각한 나름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1. 수능을 폐지하고 자격시험으로 대치해야 한다. 자격시험은 수능처럼 수험생을 줄 세우는 시험이 아니라 대학 수학 능력 여부를 알아보는 시험이다. 문제는 교과서 위주로 쉽게 출제한다. 옛날 예비고사와 비슷하지만 본고사는 없다.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나 대학을 선택할 수 있다.

 

2. 자격시험에만 합격하면 아무 대학에나 지원하고 들어갈 수 있다. 대신 진급이나 졸업은 엄격하다. 대학은 일류라는 네임 밸류가 없어지고 학과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대학 이름을 1대학, 2대학으로 부르기도 했다. 대학 문이 개방되더라도 적응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손해라는 인식이 된다면 개나 소나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3. 대학 등록금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과한 욕심을 부리거나 졸업을 못 하면 학비는 반환해야 한다. 

 

4. 장기적으로 보면 대학을 나오든 안 나오든 소득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독일에 가서 제일 부러웠던 점이 그런 부분이었다. 우리 사회도 개선되고 있는 중이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업신여기는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교육 제도의 혁명적 개선은 국민 의식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5. 학문을 할 학생과 일찍 직업 전선에 나갈 학생이 조기에 결정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독일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김나지움으로 진학할 학생이 학부모와의 상담하게 정해진다. 중고등학생은 우리처럼 학업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게 뛰놀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혁명을 하듯 하루 아침에 뒤바꿀 수는 없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지금부터 교육 개혁 문제를 화두로 제시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우리 교육은 변한 게 없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번 대선에서 교육 개혁에 역점을 두는 후보가 있다면 나는 적극 지지하련다. 내 귀여운 손주를 지옥 같은 입시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에게로 가는 길  (0) 2022.01.02
그 겨울의 선물  (0) 2021.12.19
100명산 중간 점검  (0) 2021.11.28
바깥 잠과 수면제  (0) 2021.11.17
독고다이 기질  (0)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