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독방살이

샌. 2010. 10. 8. 11:46

독방살이를 2년 동안 하고 있다. 옆에 조교가 있지만 서로 말이 별로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하루 내내 몇 마디밖에 못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무실로 마실을 가는 일도 별로 없으니 늘 혼자다. 그나마 교실에 들어가서 떠들 일이 있으니 입에 곰팡이가 생기지는 않아 다행이다.


독방살이의 결과인지 사람을 만나면 말이 많아졌다. 나는 과묵한 편이고 주로 듣는 쪽이다. 예전에는 ‘크렘린’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나도 말을 많이 한다. 또 마음 속 생각도 잘 드러낸다. 아마 독방살이의 외로움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말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어쩌다 말 할 기회가 찾아오면 얼씨구나, 하고 떠들게 된다. 말이 많아진 나를 보고 내가 놀라기도 한다. 열심히 지껄이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데를 쳐다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하고 얼른 말을 거둔다.


쓸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게 내 체질에는 맞다.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간섭 받지 않으니 좋다. 그리고 적당한 외로움은 오히려 즐길 만하다. 인생이란 게 원래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조용히 지낼 수 있으니 부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 자리에 오라고 하면 고개를 흔든다. 심심해서 혼자 어떻게 있느냐고 한다. 사람에게는 조직에서 소외되는 데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독방살이가 좋다.


되돌아보니 35년 전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청각기자재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기자재를 보관하는 방에 있으라고 해서 1년 정도 독방살이를 했다. 그때는 총각이었는데 찾아오는 여학생도 많았고 책상 위에는 매일 꽃이 바뀌면서 심심할 사이가 없었다. 도리어 귀찮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때는 피는 꽃이었고, 지금은 지는 꽃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어떤 때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미래를 생각한다면 고독과 더 친해져야 한다는 걸 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서 비껴갈 자가 있던가. 늙어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이다. 관계의 변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늙을수록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2년의 독방살이가 이런데 창창한 뒷날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말이다. 말 많은 노인처럼 경박스러워 보이는 것도 없다. 다행히 나에게는 블로그가 있으니 수다는 여기에서 떨면 된다. 요즘처럼 기회다, 하고 사람들만 만나면 주저리주저리 얕은 지식을 떠벌리는 내 모습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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