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싸가지

샌. 2010. 10. 19. 10:58

아내는 드라마를 보다가 종종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찬다. “저 싸가지 좀 봐!” 드라마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꼭 싸가지가 등장한다. 그래야 이야기에 긴장이 조성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싸가지에 열 받으면서도 드라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싸가지를 욕함으로써 생기는 심리적 대리 해소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직접 못하는 욕을 드라마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도 손가락은 다른 델 가리키면서 킥킥거리고 웃은 적이 있다.


싸가지는 ‘싹’과 ‘아지’가 합쳐진 말이다. ‘아지’는 명사와 결합하여 작은 것을 나타내는데 주로 속된 표현으로 쓰인다. ‘속’과 합쳐져 소가지가 되고, ‘목’과 합쳐져 모가지가 되는 게 그런 예다. 싸가지라는 말에도 그런 부정적 의미가 들어있다. 싹이라는 예쁜 말에 ‘아지’가 붙어서 그만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나 강아지나 망아지처럼 동물에 쓰이면 단순히 새끼를 나타낸다.


싸가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싹수의 사투리로 나와 있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싹수가 노랗다는 뜻으로 잘 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에 보이지 않는 놈이라는 말과 같다. 이번 국정감사장에서도 “앞으로 싸가지 있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누구의 입에서 나오든 싸가지라는 말은 빈정대거나 비하하는 의미로 들린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대개 무례하거나 버릇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가 많다. 듣는 입장에서는 무척 기분 나쁜 말이다.


싸가지의 특징은 상대를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그걸 모른다는 점이다. 싸가지는 대체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 싸가지는 이기적이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지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싸가지는 기본적인 인간의 품성에 해당되는 것 같다. 타고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싸가지적 특성이 쉽게 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싸가지 없는 인간이 어디에나 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세상을 살려면 싸가지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예 싸가지 옆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늘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직장 동료나 가족 중의 하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 경험으로 볼 때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니면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하며 통 크게 받아들이든지.... 옆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만큼 큰 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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