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쌓이는 말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시부모 때문에, 남편 때문에 불쑥불쑥, 시루 속 콩나물처럼 올라오는 말들을 거미줄 치듯 집 안 곳곳에 걸어두곤 하였다 하고 싶은 말 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빨과 이빨 사이 틈을 야물게 단도리하곤 하였다
이말산 근처 산자락 근방 카페 창가에 앉아 나만을 위하여 브런치 세트를 주문한다
해종일 하늘을 보다가 빽빽이 들어찬 허공의 고요를 보다가 인체 혈관 3D 사진 같은 한 그루 나무를 보다가 우듬지로 올라간 빈 둥지를 보다가 빈 둥지 같다는 생각을 들여다보다가
카페에 여자를 벗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로 갈아입는다
- 외출 / 허향숙
요사이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과 이 시의 분위기가 닮은 데가 많다. 인생에서 상심(傷心)은 늘 함께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상심은 벗어나는 게 아니라 벗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살아내는 힘을 내자고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것 같다.
시에 나오는 이말산이 어딘가 찾아보니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있다. 은평뉴타운 뒷산으로 구파발역에서 내린 등산객이 북한산으로 오르는 코스다. 북한산 둘레길과도 겹친다. 집에서 멀긴 하지만 가벼운 산길 산책 후 산자락의 카페에 들러보고 싶다. 창가에 브런치 세트를 주문한 한 여자가 앉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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