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거기서 떠나 갈릴래아를 지나갔는데,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셨다. 실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사람들 손에 넘겨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했다.
- 마르코 9,30-3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다. 이 부분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 마르코복음의 기자가 포함된 초대교회의 케리그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의 생애와 전체 말씀의 맥락을 살펴볼 때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복음서에 삽입된 부활 예고 장면은 생뚱맞게 등장한다. 제자들조차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마르코는 적는다. 그렇다면 예수는 자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사명을 제자들에게조차 이해시키지 못한 결과가 된다. 모호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한 뒤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까지는 예견했을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 사후에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신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자들에게 예수 부활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마르코는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의 직접 예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나 믿음을 떠나 성경을 읽을 때 드는 나의 생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