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오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상세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지구 내부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터전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지구가 지각, 맨틀, 핵으로 되어 있듯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측 수준이지 거의 무지하다. 인간이 지각의 표면만 겨우 건드렸을 뿐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지구의 내부처럼 신비에 싸여 있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요인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고 암석이 녹는다. 아마 천 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마그마가 위로 이동하면서 모이면 거대한 마그마 챔버가 된다. 마그마 챔버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면 화산이 생기고 주변에 노여움의 불길을 내뿜는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억눌린 욕망이나 욕구불만은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화의 챔버'가 만들어지면 이제 폭발할 일만 남았다.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분출하듯 사소한 자극에도 감정은 폭발한다. 심할 경우 주변을 용암과 화산재로 덮으며 질식시킨다. '쌓이면 터진다!'는 지구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소통이나 표현에 서툰 내성적인 사람은 화의 챔버가 쉽고 크게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불시에 터진다. 소위 욱! 하는 성격이다. 상대는 이유도 모른 채 폭탄을 맞는 셈이다. 남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조곤조곤 대화를 할 줄 몰랐다. 못마땅한 것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한꺼번에 폭발했다. 쌓인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대화는 더욱 끊어졌다.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한 부분이다.
이런 성격이 지금이라고 달라졌을 리 없다. 의식은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해도 서운함이나 억압된 심리는 안 보이는 데 숨어 있을 뿐이다. 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참을 인'자를 세 번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태를 지연시키기만 한다. 자신이 만든 업(業)에서 어느 누가 벗어날 수 있겠는가. 늙어서 화를 내는 빈도나 강도가 약해진 것은 힘이 떨어진 탓이지 인간이 되어서가 아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무섭도록 잔인하다.
그러므로 화가 쌓이지 않도록 평상시에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김을 빼는 것이다. 불만이나 서운함은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화의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잘못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하기도 한다. 인류가 마그마 챔버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두 주 전에 폭음을 하고서 자폭을 한 적이 있다.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덩어리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폭발지수가 7등급쯤 되었다. 나는 여전히 짙은 화산재를 뒤집어쓴 채 숨 죽이고 있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다. 굳이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라면 폭발 이후 몸과 마음이 리세팅되었다는 점이다. 태풍이나 지진이 100% 부정적이지는 않다. 나름의 자연계 순환 작용의 일원이다. 대기권이나 판의 긴장 상태가 해소되어 정상으로 돌아간다. 한참 동안 내성(內省)을 하면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살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한두 가지겠는가. 화를 품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대폭발은 싫다.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 챔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것이 과제다. 성공하기는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낮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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