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는 65세부터 노인이 된다. 내 경우에는 경노카드를 발급받을 때 벌써 노인이 되었나, 라는 씁쓰레한 심정이 앞섰다. 65세는 몸이나 마음이나 노인이라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
그러나 70줄에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이 앞에 '6'자가 붙는 것과 '7'자가 붙는 것은 천양지차다. 우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아무리 고령사회라지만 일흔이라는 나이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신체나 정신도 전과 확연히 다르다. 나이 70은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되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능동적인 생활 주체가 수동적인 약자로 변하는 시기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70줄에 들어서면 질병을 앓을 확률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이 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사망할 때까지 고령자의 약 10% 정도만 심신이 건강한 상태로 보낸다는 통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 국민 한 사람의 생애 의료비는 평균 2억 6천만 원 정도인데 그중 절반이 70세 이후에 지출된다는 것이다.
고령자가 요양원 같은 돌봄시설에 입소하는 전형적인 패턴은,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살짝 넘어졌는데 골절로 입원 → 금방 퇴원할 줄 알았지만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짐 → 돌봄시설 입소'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본인만 아니라 가족들 생활의 질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비중이 일본이 추월한다는 예측이다. 그때는 고령화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37%가 된다. 2060년이면 44%에 이른다. 이 예상대로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70줄에 들어서니 "이젠 늙었구나!"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봐서만이 아니다. 행동이 굼떠지고 머리 회전이 느려지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의욕과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의기소침해진다. 다가올 미래의 예상도마저 암울하다. 과연 10%의 선택받은 무리에 낄 수 있을지, 순전히 운과 요행에 좌우되는 것이니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는 세월의 무자비한 흐름에 떠밀려 간다. 그 과정에서 내 바람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동기들 단톡방에서는 건강 얘기가 제일 많이 올라온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나 운동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건강염려증이 의심 되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오래 살면 살수록 요양원에서 생을 마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10년, 20년 뒤 목숨만 부지한 채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우리들 모습을 상상하면 슬퍼진다.
이름난 모 철학박사는 65세 이후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렀다. 내가 볼 때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마치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일과 열정으로 노년을 살아가도록 건강이 뒷받침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노년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다. 모든 것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 상실은 시고 쓴맛이다. 노년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나이다. 결국은 '삶의 태도'에 관한 문제로 귀결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월의 흐름을 관조하며 바라볼 수도 있다는 데 작은 위안이 있다. 요사이 자주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겸허'다. 나를 비우고 낮추는 것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언젠가는 나를 떠나갈 것이다.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마저도. 그 사실을 직시하면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일어났다 스러지는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듯 담담히 나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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