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지면서 두 가지를 경계한다. 하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가는 것이다. 노화는 몸과 마음의 모든 기능이 퇴화하는 과정이다. 하늘로부터 받고 누린 것을 하나하나 돌려줘야 한다. 상실이 순리라고 할지라도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가슴이 뛰는가. 어린 손주의 해맑은 웃음, 왕성한 호기심,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동시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케 한다. 워즈워스는 무지개를 보며 노래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마찬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무지개'는 자연에 대한 감성과 경이감일 것이다. 어린아이는 길섶에 핀 작은 꽃, 흔한 개미를 보고서도 경탄한다. 유치원생일 때 손주는 작은 돌멩이만 보면 신기해서 만지느라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비하고 흥미로운 소재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그저 그런 것이 되고 심드렁해진다. 괴테는 "여든이 되어도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했다.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 뭐라고 속삭이는지 궁금한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다른 하나는, 교만해지는 것이다. 노인은 자신의 인생 경험과 신념에 갇히기 쉽다. 딱딱한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세상이 이래야 한다는 독단에 빠진다. 자의식이 강하면 교만해진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유연한 사고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럴 수도 있겠다" - 가능하면 이렇게 말하도록 요사이 나는 애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나를 낮추고 다른 이의 태도와 습관을 인정하는 태도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겸손은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하지 않는다.
교만은 주변 사람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화를 끼친다. 인생길에는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마음이 교만하면 장애물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자신을 성찰하는 겸손한 사람은 넘어지더라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한다. 누구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누구에게는 디딤돌이 된다.
인생의 장애물은 어떻게 피해가느냐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년이 될수록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맞이한다. 겸손한 마음이란 어떤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이다.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삶의 곤경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그러나 대응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버텨내는 힘은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교만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가는 것과 교만해지는 마음 - 이 둘은 늙어가면서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다. 늙어보니 노인만이 가지고 있는 완고함과 편협함이 있다. 마음밭은 게을리하면 금방 잡초로 덮여버린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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