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60]

샌. 2022. 10. 29. 10:49

그들은 바리사이와 헤로데파 몇 사람을 보내어 말을 꼬투리 삼아 예수를 책잡으려 했다. 그 사람들이 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희가 알기로 선생님은 진실하시고 어느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과연 사람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주민세를 바쳐도 됩니까, 안 됩니까? 바칠까요, 바치지 말까요?"

예수께서 그들의 위선을 알아채고 말씀하셨다.

"왜 나를 떠보는 거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시오. 어디 봅시다."

그들이 가져오자 예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오?"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드리시오."

그들은 예수께 놀라 마지않았다.

 

- 마르코 12,13-17

 

 

예수의 대응에 박수를 치는 동시에 이런 말씀을 하신 예수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논리적으로는 황제의 것, 하느님의 것이 분리될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지 어찌 황제의 것이 따로 있겠는가. 그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예수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예수는 로마의 식민 통치를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분명 이 대목은 예수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 처벌하려는 자들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예수는 현명하게도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이 가지는 의미에 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종교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비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교회에 다니던 70년대에 담임목사는 교회는 정치인을 위해 기도할 뿐이지 정치적 현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서 행해지는 불의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 예수가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을 찾아간 의미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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