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58]

샌. 2022. 10. 4. 10:53

일행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께서 성전 안을 거니실 때 대제관과 율사와 원로들이 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일을 할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시오.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지요.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비롯했습니까, 사람들에게서 비롯했습니까? 대답해 보시오."

그들은 서로 궁리하며 말했다.

"'하늘에서'라고 하면 '그럼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터인데, 그렇다고 '사람들에게서'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소?"

그들은 군중이 무서웠으니 , 모두가 요한을 참으로 예언자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겠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지 않겠습니다."

 

- 마르코 11,27-33

 

 

예루살렘에서의 사흘째 날이다. 어제와 달리 분위기가 차분하지만 폭풍 전야의 느낌이다. 성전 쪽에서는 이미 골칫덩이인 예수를 제거하기로 작정하였을 것이다. 어제의 소동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예수의 말에서 죄가 될 빌미를 잡기 위해 관계자들이 나와서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함정에 걸려들 예수는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권한'은 기존 체제가 부여한 힘이다. 이미 굳어져 버린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틀 안에서의 권위다. 예수는 민중을 억압하는 이런 틀을 깨기 위해 오신 분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조직화되고 이념화된 체계는 늘 소수의 상위층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로마가 지배하던 당시의 유대 사회는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정치와 종교의 결탁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이런 사회일수록 민중을 억누르기 위해 권한과 권위에 의존한다. 세례자 요한은 지배층의 위선과 불의를 비판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세례자 요한을 보면서 예수는 자신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교 축제를 앞두고 예루살렘에는 많은 순례객이 모여 있었다. '군중을 무서워했다'는 표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태의 발생을 유대교 상층부에서는 상당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예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군중의 소요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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