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은 없다>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가볍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선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을 표하거나 어떤 죽음은 응당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해서,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죄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을 눈앞에서 볼 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책에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 외에도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도 있다. 가면을 벗은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이다. 또한 응급실 의사의 애환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직업인 것 같다. 또한 지은이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도 지적한다. 병원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부족해서 살 수 있는 많은 외상 환자가 죽어간다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외상을 입는데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중증 외상 환자는 한 해 12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중 3만 명이 죽는데, 1만 명 정도는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졌다면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해서 적절한 처치를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광우병 사태 때는 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1만 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관대한 게 너무 이상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증증 외상에 대한 대책으로 외상센터를 세우려고 하지만, 센터까지 잘 이송되어 갈 사람이면 원래 살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당장 사고가 났을 때 상주하고 있다가 가장 빨리 눈앞에서 환자를 볼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 한두 명이 더 급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은 천차만별이다. 연로하신 어머니와 살아가는 딸이 있었다. 어느날 저녁 어머니가 딸에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딸은 어머니 몸을 정성껏 씻겨 드렸다. 어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잠자리에 드신 어머니는 다음날 깨어나지 못했다. 소원대로 잠을 자다가 소천하신 것이다. 그러나 <만약은 없다>에 나오는 응급실 풍경은 인간의 고통과 비명으로 얼룩져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았느냐의 과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여기서 편안히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데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외는 내 능력 밖의 영역이니까.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무소유 (0) | 2022.12.07 |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0) | 2022.12.04 |
그리스도의 탄생 (0) | 2022.11.23 |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1) | 2022.11.15 |
고백의 형식들 (0) | 202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