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리스도의 탄생

샌. 2022. 11. 23. 09:54

"인간 예수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해석을 담은 책이다. 어이없는 스승의 죽음을 본 제자들은 황망한 가운데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스승을 재인식하게 되고 삶이 변화되며 담대하게 되었는지를 성서를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추론해 간다.

 

엔도 슈사쿠는 제자들의 변화를 예수의 사랑에서 찾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미워하기는 커녕 십자가 상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지려 한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자책하면서 굴욕을 느끼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예수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다시 제자들 곁으로 올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과 재림이 자연스레 등장한 것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공동체로 출발했을 테지만 강력한 신념은 감추어져 있을 수 없다.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피해 있다가 예루살렘에 모여서 예수를 전한다. 이때 핵심 인물은 베드로와 예수의 사촌인 야고보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나자렛인'이라고 불렀고, 자기들끼리는 '성도' 또는 '가난한 이'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를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이 지상에 온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흠모했을 뿐,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예수에 매달리고 점차 예수는 '사랑의 의인'에서 '메시아'로 변해 갔다. 나약했던 제자들이 이렇게 변한 데는 예수의 현현을 목격한 종교적인 체험이 있었을 수도 있다. 스테파노를 필두로 한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는 예루살렘 제자들의 예수와 바울의 예수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제자들이 재림과 심판을 강조했다면, 바울은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앞세웠다. 제자들은 기존 유대교와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웠던 측면이 있었지만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거침이 없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되자 제자들에 의한 예루살렘 공동체는 소멸되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어도 하느님은 침묵했다. 왜 하느님이 침묵하시는지 당시의 신자들은 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이 오히려 더욱 신앙심을 공고히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예수의 재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대부분의 신흥 교단에서는 예수의 재림을 무기로 교인을 모으고 교세를 확장한다.

 

엔도 슈사쿠는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살펴 보면서 여전히 불가사의한 부분이 있다고 고백한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무력한 남자가 어째서 모든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까? 어떻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변하게 했던 걸까? 예수의 불가사의는 아무리 합리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신비라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것을 예수의 'X'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존재와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영원한 동반자를 계속 찾을 것이고, 예수는 이런 인간의 간절한 기대에 답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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