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회 네 명이 1년 만에 만나서 영주 나들이에 나섰다. 부석사와 무섬마을에 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이랍시고 내가 안내하는 꼴이 되었다.
9시에 곤지암역에서 합류하여 소머리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먼저 무섬마을로 향했다. 나로서는 영주댐이 완공되고 나서는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댐이 영향이 어떤지 궁금했다. 모래사장은 변함이 없었으나 물은 많이 탁해 보였다. 사람들이 무섬마을을 찾는 이유는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기 위해서다. 외나무다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깨워준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무섬마을은 이 외나무다리를 이용해 외부와 연결되었다.
내성천 모래사장은 정말 아름답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풍경이다.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로 원래 '물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무섬마을은 오래 전부터 사상이 자유로웠던 마을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농민이 함께 공부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운동의 본거지로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아도서숙(亞島書塾)이 있었다. 6.25 전쟁 때는 좌익과 우익이 공존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또한 면적 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항일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다.
이번에는 무섬마을 둘레길을 걸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산길을 지난 다음 하류에 있는 두 번째 외나무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코스였다. 산길에서는 노루발풀꽃을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순흥에서 묵밥으로 점심을 먹고 소수서원을 찾았다. 언제 봐도 감탄하게 되는 소수서원 솔숲이다.
풍기 군수였던 퇴계 이황 선생이 명종 4년(1549)에 세운 취한대(翠寒臺)가 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변에 있다. 바위에 새긴 '백운동(白雲洞)'과 '경(敬)'은 각각 퇴계와 주세붕의 글씨라고 한다.
화단에는 때 늦은 작약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부석사에 들렀다. 부처님 오신 날이 사흘 전이었다.
우아한 무량수전 지붕 끝 기와 선에 다시금 감탄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고 있는 무량수전 나무 기둥.
조사당에 있는 선비화는 철책으로 둘러싸여 보호 받고 있다. 선비화의 식물명은 골담초다. 후계목이 옆에 자라고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자란 나무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국립산림치유원을 찾았다. 산림 효과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무섬마을, 소수서원, 부석사, 산림치유원을 찾아본 당일치기 영주 나들이였다.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들이 반가웠고, 특히 내 고향을 소개해줘서 기뻤다. 다들 만족한 탓인지 내달에는 강릉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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