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 김예슬

샌. 2023. 7. 31. 10:41

우리 대학은 입학시험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퍼스도 없다.

 

입학시험은 없지만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없지만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과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

캠퍼스는 없지만

온 국토와 지구마을과 삶의 현장이 우리의 캠퍼스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딛고

계절의 길을 거닐며 야생자연을 탐험한다.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삶의 기술을 배운다.

시를 낭송하고 손글씨를 쓰고

깊은 숨을 고르며 내 영혼의 고유한 리듬에 따른다.

묵직한 고전을 읽고 신문뉴스를 분석하고

그것을 삶에 곧바로 적용시켜 나간다.

호미와 삽을 들고 생명농사를 짓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나눔 농부가 된다.

스스로 밥을 지어 차려내고

생활도구를 만들어 쓰는 살림살이를 배운다.

월드 뮤직을 듣고 다른 문화를 탐구하며

글로컬Glocal 마인드를 키운다.

힘 없는 사람들과 불의한 현장에 함께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행동을 한다.

국경 너머 굶주림과 분쟁 현장에 

작은 평화를 나누는 마음을 기르고 실천한다.

자신의 잠재된 재능을 찾아

사회에 꼭 필요한 창업을 하고 경영하는 법을 익힌다.

종교의 틀을 넘어 경전을 묵상하고

마음을 밝게 하며 수행 정진한다.

 

학사 운영 원칙은 다음과 같다.

봄싹이 트고 꽃이 피고 수확하고 눈 내리는 날은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뛰어논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사람 중심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서로 사이좋게 해 나간다.

억지로 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되

서로의 약속을 지키고 사람으로서 '안 되는 건 안 된다.'

 

지금 여기, 단단하고 건강한 토종씨앗처럼

빛과 사랑의 아이들이 스스로 키워온

희망의 씨앗이 퍼져 나간다.

이런 빛나는 삶의 대학 하나 세워가는 꿈을 꾼다.

 

-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 김예슬

 

 

이런 배움터를 희망하는 것이 백일몽에 불과할까? 아니다. 조건만 맞으면 가능하다고 본다. 국가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소규모 자립 공동체에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 공동체는 너무 크면 안 된다. 면 단위 정도가 적당하리라. 공동체는 자급자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의식주를 비롯해 에너지, 교육 등 외부 의존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공동체가 있다면 많은 시간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쓸 수 있을 것이다. 교육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여러 선구자들이 이런 공동체를 꿈꿨고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여기서 '과(寡)'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욕망의 적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구성원의 과욕(寡欲)이야말로 공동체 성공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자(者)'에서 벗어날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김예슬 씨는 고려대학교에 다니다가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래디컬한 그의 저항 방식이었다. 허무맹랑하게 보이더라도 꿈들이 모이고 뭉치면 현실이 된다. 자본주의도 역사 발전의 한 단계일 뿐이다. 지구가 인간의 이런 체제를 품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연한 듯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참으로 엉뚱하고 어리석게 보일 게 분명하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크게 틀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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