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하답 / 백석

샌. 2023. 8. 16. 10:17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아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 하답(夏畓) / 백석

 

 

옛 추억 속으로 젖어들게 하는 시다. 눈을 감으면 열 살 언저리 소년 시절의 나와 동무들이 보인다. 산으로 들판으로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여름의 주무대는 마을 앞 냇가였다. 멱감고, 헤엄치고, 다이빙하고, 물에서 나오면 모래사장에서 뒹굴었다. 땡볕에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가도 개의치 않았다. 하루 종일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동화 같은 시절이었고, 아이들에게는 낙원에 다름 아니었다.

 

시에 나오는 광경은 우리 때보다 더 원초적이다. 아무리 그래도 개구리를 구워먹거나 물고기를 생으로 먹은 경험은 없다. 하물며 게구멍을 쑤시다가 물쿤하고 뱀을 잡다니, 시인이 그리는 여름은 아이들과 자연이 하나로 녹아 있는 것 같다. 짧은 시지만 짝새, 개구리, 게, 뱀, 물이끼, 버들치, 물총새 등 다양한 생명이 등장한다. 마지막 구절인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된 정경을 보여준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이 시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다음에 손주가 오면 같이 읽으며 설명해 주고 반응을 살펴봐야겠다. 내가 예상 못한 엉뚱한 대답이 나올지 모른다. '하답'의 체험이 있건 없건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건 물총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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