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을 죽이는 종
닮으면 닮을수록
더욱 잔인하게 죽이는 종
마침내 제 터전마저 허무는 종
제 새끼들이 살아야 할 터전까지도
제멋대로 없애버리는 종
마침내 자살로 멸종의 길로 가는
이 세상에 전례가 없는
희한한 종
똑똑한 체하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종
- 인간 / 유자효
대학생 때 생물학 시간을 좋아했다. 담당 교수님이 다양한 생물의 생태를 '동물의 왕국' 이상으로 흥미롭게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얘기 중 하나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산다는 레밍이라는 쥐다. 번식력이 좋은 레밍은 어느 시기가 되면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해안가 절벽에 이르러 모두 바다로 떨어진다고 한다. 일종의 집단 자살이다. 이유는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신기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시를 읽다가 레밍이 떠오른 건 인간이 레밍과 비슷한 게 아닌가, 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몰려가는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막무가내의 집단 질주를 하고 있다. 무리들 중 몇몇은 죽음의 냄새를 맡지만 밀고 밀리면서 함께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다. 우주 먼 곳에서 지적인 생명체가 지구를 지켜보고 있다면 이 번쩍이는 불빛을 인간의 마지막 불꽃놀이라고 판단할지 모른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진영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이다. 한쪽에서는 희석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바다와 수중생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한다. 문제는 계속 발생하는 오염수를 처리하자면 50년 넘게 바다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로 중심부는 손도 못 대고 있어 언제 폐로될지 막막하다. 후쿠시마 경우를 봐도 원자력은 인간이 손 대기에는 너무 후과가 무서운 에너지다. 그런데도 500개나 되는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또 새로 지어지고 있다. 더구나 강대국은 지구를 몇 백 번이나 파괴할 가공할 핵무기를 쌓아두고 있다. 이 정도면 인간이 레밍과 다르지 않다고 볼 근거가 오히려 희박하다. 시인의 말대로 지구 생명체 역사상 이런 종은 전례가 없다. 똑똑한 체하지만 가장 어리석은, 참말로 희한한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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