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미래에서 온 편지

샌. 2010. 8. 24. 10:41

편안하게 살아간다. 레버만 돌리면 냉온수가 나오고 버튼만 누르면 똥오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전화만 하면 음식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이 배달된다. 냉장고에는 음식물이 가득하고 여름인데도 집안은 서늘하다. 풍족하면서 차고 넘치는 생활이다. 그런데 두려울 때가 있다. 무슨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이 같은 삶의 태도 때문이다.


아래 글은 ‘미래에서 온 편지’의 일부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2107년의 미래에 사는 이가현재로 보낸 가상의 편지다. 앞으로 100년 뒤 지구에서 석유파티는 끝나고 자원은 고갈되었다. 경제는 붕괴되었고 물과 식량은 턱없이 부족한 세상이 되었다.


‘내가 십대 후반이 되자 젊은 사람들 사이에 눈에 띄는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30-40세 이상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경멸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자원을 모두 써버렸고 자식들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어른들이 젊었을 때 그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했을 뿐이지요. .... 어떤 곳에서는 세대간 싸움이 부글부글 끓는 원한으로 남아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했습니다. 또 어딘가에선 조직적인 숙청도 벌어졌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나는 나이 든 사람들을 직접 공격한 적은 없어도 욕설을 퍼붓고 창피 주는 일에 가담한 적은 있습니다. ... 내가 살고 있는 2107년의 젊은이들을 화나게 하는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릴까요? 그들에게 예전엔 사람들이 잔디에다 수백만 갤런의 물을 계속 퍼부었다는 얘기를 해주면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수세식 변기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설명하면 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날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 물 문제는 심각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구 자원은 무한정하다고 여긴다. 또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까지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선 나부터도 그렇다. 그런 건 설마 기우겠지, 과학이 발달하면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100년 뒤의 세상이 위 편지와 같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우리는 후손들에 대해 엄청난 죄악을 짓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를 아직 이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은 후세대들까지 고려해야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섬뜩했다. 우리가 아무 의식 없이 살아가는 행동들이 지구에는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는 사실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뭇 생명이나 우리의 미래 세대까지 연결하면 그 영향은 엄청나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하다간 문명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붕괴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둔한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이젠 물을 아끼고 전기를 아끼는 등의 자원 절약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인간의 생활 패턴이 변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환경 문제에는 공감하지만 자신의 삶의 질(?)을 포기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산업문명의 종언을 예고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그것이 경착륙이 될지 연착륙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질적인 변화가 찾아오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전환기에 사는 사람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문명의 단맛을 즐기기만 한 우리와 같은 산업 세대들 탓이라고 비난 받은들 할 말이 없다.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볼 때 문명의 붕괴는 항상 새로운 문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산업문명의 종식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인류는 성장해 나가는지 모른다. 탐욕이 절제되고, 지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엄청난 고통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몫은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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