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마음의 완충지대

샌. 2010. 9. 10. 12:39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면 많은 가구들이 확장을 신청한다. 베란다를 없애고 거실이나 방을 넓히는 것이다. 넓고 여유 있게 사는 건 좋지만 대신에 베란다 공간은 활용하지 못한다.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달리 마당이 없다. 그 역할을 아파트에서는 베란다가 한다. 화초를 가꾸고, 빨래를 너는 등의 소소한 일상이 베란다에서 일어난다. 아파트에 살아보니 베란다의 기능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우리는 확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


베란다가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우선 비가 올 때 창문을 열지 못한다. 무척 답답할 것 같다. 빗소리를 즐길 수 없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요사이 고급 아파트들은 아예 외부와 완전히 밀폐되게 만든다는데 이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다. 그런 데서는 태풍이 와도 TV를 켜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또 베란다가 없으면 냉난방시 단열효과도 줄어든다. 베란다를 없앨 때 얻는 이득에 비하면 잃는 게 너무 많다.


아파트 베란다는 안과 밖을 이어주는 완충지대 역할도 한다. 완충지대가 없으면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다. 남과 북 사이에도 비무장지대라는 완충지대가 있다. 그럼으로써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유지된다. 지난주에는 태풍 때문에 많은 집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밖에서 날아온 물체에 직접 부딪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집은 거실이 온통 엉망이 되었다. 얼마나 놀랐고 무서웠겠는가. 그걸 보면서 우리는 베란다를 살려둔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완충지대는 우리 마음에도 필요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놀랄 일이 많은 세상이다. 만약 마음의 완충지대가 없다면 외부 충격으로 마음은 보다 쉽게 내상을 입을 것이다. 자살 충동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이런 완충지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도 나이가 들수록 하늘의 섭리인지 그런 완충지대가 생기는 것 같다. 노인들은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워낙 험한 일을 많이 겪다보면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갑자기 닥치는 불행도 운명이거니 하며 체념한다.


자신이 의지하는 바가 무엇이든 마음의 완충지대를 잘 가꾼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자동차가 자갈길을 가더라도 충격흡수장치가 잘 되어 있으면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마음의 방에도 그런 견실한 완충지대가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괜한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며 잠 못 이루는 밤도 줄어들겠지. 밖에는 거센 태풍이 불어도 좀 더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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